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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pr 14. 2024

보통날

오전에 시장 마실을 거닐다가 여름에 신을 샌들을 하나 샀다. 현금가 12,000원이다. 좀 깍아달랬더니 에누리가 없다. 푹신푹신 하니 예쁘긴 하다. 올 여름은 이 샌들 위에서 잘 버텨내야겠다.


두어달간의 방황 끝에 어느덧 보통의 날들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 생경하다. 오고가며 수년을 봐온 옆집 고양이 두 마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슬픔도 보통의 날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바람이 색을 미는 것 처럼, 곡해스러운거다.


쓰다만 원고를 다시 꺼내들었다. 책 분량으로 환산하자면 700페이지가 넘어간다.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 위해 편집을 하고 다듬자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으름의 발로다.


요즘은 틈날때마다 대학생 논술과 취업준비생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봐주는 부업도 곁들여 하고 있다. 토익과 영어회화도 덤으로 가르친다. 대부분 메일과 온라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 편하다. 돈벌이로 시작한건 아니지만, 부업 치고는 꽤나 수익이 좋다.


논술 같은 경우에는 어떤 주제를 놓고 같이 글을 써보는 식으로 진행을 한다. 예컨데, 삼국지의 제갈량이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면 어떤 식으로 통치를 했을까, 하는 식이다. 이 주제를 관통하려면 우선 삼국지의 개략적인 내용을 알아야 된다. 그리고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와 외교, 여야간의 대치 상황들도 이해하고 있어야 됨은 물론이다. 그렇게 나는 같이 공부를 하고 학습을 한다. 논술, 그러니까 글쓰기에 정답은 없다라고 생각을 해서다.


하루 간에 특정 주제로 서로 글을 써본 뒤에는 그 친구와 내가 쓴 글을 맞바꿔 비교를 해본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준다. 지식을 글로 맞바꾸는 과정 등을 설명해주는거다. 글은 수학처럼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내 방식이 맞다고 보지도 않는다. 다만 글과 친해지고, 본인만의 언어가 서서히 돋아날 수 있도록 조력을 해주는거 뿐이다.


이력서에 첨부되는 자기소개서도 매한가지다. 어떤 친구는 그런다. ”선생님! 돈 더 드릴테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써주시면 안되요??“ 라고.


속으로는 ’대환영‘이였다. 한 30만원 부르면 되려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나. 게으름의 연속으로 속마음이 겉으로 나오기까지는 한참이나 걸리는 것을.


기자나 작가들처럼 글을 애써 잘쓰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소서는 더군다나 더 그렇다. 유치해도 좋으니 본인 이야기를 써내려가면 된다. ”나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거에요!!“가 아니다. 죄다 돈 벌려고 오는 것일테고, 출근하면 퇴근 생각부터 나는게 회사 생활인거 빤히 아는데, 뼈를 묻는다고 하면 ’말이야 방구야‘ 할게 뻔하다. 유치하고 이불킥을 찰 뻔 했던 본인의 이야기를 쓰시라, 그럼 된다.


영어 같은 경우엔 문법과 독해 기술을 알려준다. 긴 문장의 요점을 찾아 문제를 낸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회화는 외국인들이 현지에서 많이 쓰는 표현들을 알려주는데, 나도 외국 생활을 안한지가 오래되서 그런지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민낯이 드러나기전에 회화를 가르치는 건 포기해야겠다.


모처럼의 일요일 내음이 좋다. 가게 창틈으로 스며드는 볕뉘도 계절과 잘 어우러진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자연의 섬광을 만끽하는터라 더 달가운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나는 이렇게나 잘 살고 있다.


근래 서울의 선배들을 만나 고민을 한참이나 털어 놓았는데, 요지는 이런거였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야 굳이 한 사람이 뒤쳐지더라도 남편 덕, 아내 덕, 아이들 덕을 보며 만회를 할 수 있는데, 나는 아니라는 것. 혼자 빛을 내야 된다는 것이다. 미끄러져서도 안된다. 딛고 일어날 지렛대가 없다. 아파서도 안된다. 간호해줄 이 한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빛나게, 혹은 폼나게 살고 싶어졌다.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유튜브를 보며 배우는 기타의 재미가 솔솔한 요즘이다. 언젠가 곡 하나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제목은 쿨이 부른 ’오랜 친구에게‘라는 어쿠스틱 풍의 곡이다.


먼 훗날 자식을 모두 출가시킨 나의 오랜 친구들이 그제야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적한 목장에서 혼자 소를 키우고 있을 나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잔디밭에서 소주를 나눠마시며 이 곡 ’오랜 친구에게‘를 들려주는거다.


그렇게 날개를 편 단청이 꿈속으로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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