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겸사겸사 바람도 쐴 겸 하루전날 출발을 했다. 20대 초반에 군복무를 했던 전방 지역 마을에 가서 하루 자고 싶어서다.
안동에서는 차로 4~5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서울을 거쳐 의정부, 동두천을 지나 최북단 기차역인 백마고지가 목적지였다. 가게를 마치고 다늦게 출발을 했더니 새벽이 되서야 도착을 했다.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을 해 어디 둘러볼 수도 없었고, 근처 편의점에 들려 술과 간단한 요깃거리만 사서 예약해둔 펜션으로 곧장 향했다.
20년전의 향수가 풍겼다. 전방 지역만의 특유한 내음이다. 허름한 벌판에,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은 냉기도 향으로 둔갑해 피어오른다.
근처에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해 파놓은 제2땅굴이 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의 뮤직비디오 장소로 유명해진 북한 노동당사도 위치해 있다. 그리고 저 뿌연 안개 너머로 내가 2년2개월 간 군생활을 했던 철책 부대도 보이기 시작했다. 낯설며 반가웠다. 전역한지 20년이나 됐다니, 장고한 세월의 흔적이 다시금 도드라진다.
한참이나 기억의 결을 따라 걷다보니 시간은 새벽 4시를 향해갔다. 다음 날 일찍이 서울에서 미팅도 있고, 눈이 스르르 감기는 듯 해 아무도 없는 펜션에 홀로 덩그러니 누웠다. 기억에서 꺼낸 많은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나는 이제 그럴 수가 없어서 가끔은 슬프다. 경고망동 했던 지난 날의 과오를 외로움으로 돌려받는거다.
언젠가 만나던 친구에게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함께 미국으로 여행 가서 캐딜락 차 한대를 렌트하는거야. 그리고 우리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횡단을 하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황무지에 덩그러니 위치한 펍에 들려 맥주도 마시고, 라스베거스에 들려 유흥도 만끽하고, 미시건 주에 있는 오빠가 다니던 대학에 들려 그 날의 캠퍼스 낭만도 만끽해 보는거야. 해질 무렵엔 그랜드 캐년의 절경을 바라보며 키스도 하는거지!!“
이 날 오랜 시간 혼자 운전을 하며 그 기억에 잠시 사무쳤더랬다. ’함께‘라는 낯설어진 단어가 그립기도 했다.
”오빠, 신호등 빨간불에 걸릴 때 마다 우리 뽀뽀하는 거야!!“ 하며 조수석에서 다정하게 굴었던 그 날의 시간들은 어디로 모두 사라져버린걸까.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다. 너무도 외로운 날엔 가끔 뒷걸음 치며 걷기도 하고, 하염없이 글을 써내려가기도 한다. 다시 오지 않을 너에게,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그 날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지나간 모든 당신들의 이름들, 나는 쉬이 잊을수가 없다. 그들은 올봄에도 어김없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