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는 말했다.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나왔다. 그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라며.
그런 마크 트웨인은 말한다.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집 개가 더 좋아진다.“라고.
시대를 넘어, 나는 웬걸 여전히도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에게서 벗어나질 못한다.
인간, 그러니까 사람이 참 싫을 때가 있다. 거칠고 낯설다. 욕설도 난무한다. 정치, 사회, 경제부터 시시콜콜한 관계에까지, 뭐하나 이해하기가 참 힘들다. 우리가 배운 의무교육보단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신뢰하는 세상이여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요즘 스스로가 정신나간 사람인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다시 샛말간 알약들을 복용해야 될지도.) 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해도, 강도와 간음의 현장을 목도해도, 학교에서 선생을 놀려먹고 줘패는 학생들을 봐도 놀랍지가 않은거다. 뭐랄까, 이 같은 일이 하루라도 안일어난다는게 되려 생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 글쎄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다시 원초의 그곳, 저 먼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까.
순애보, 짝사랑, 고무줄놀이, 메뚜기잡이, 구슬치기, 팽이치기, 땅따먹기, 손편지, 주윤발, 서태지, 맹구, 영구, 후레쉬맨, 우뢰매, 유머1번지, 봉숭아 학당 등의 키워드가 살아숨쉬던 그 시절.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이웃끼리 서로 나눠먹고, 스승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그 시절.
서태지가 춤추고 늘어난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며, 삐삐의 숫자로 마음을 전하던 그 시절.
여름에는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고 겨울에는 눈밭을 구르며 동네 친구들과 참 즐거웠지. 나는 다 기억할 수 있다.
혐오와 갈라치기가 없었던, 즉슨 이 지경이 되기전까진 참 좋았던거다. 기억할 수 있는가? 우리 그때 정말 좋았다.
서로가 의기투합해 실종된 개구리소년을 찾겠다고 또 얼마나 날뛰었는가.
그렇다. 다 기억할 수 있다. 우리만의 특권이다. 아날로그, 디지털, AI시대 모두를 경험한다는 것도.
그럼에도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집 개가 더 좋아진다는 생각은 불변인가보다.
어쨌거나 변함없이 사랑하고 행복하길.
(취한터라 횡설수설이다. 헤밍웨이며 마크 트웨인은 웬말인가. 개랑 개구리는 또 뭐고. ‘자니’하며 톡을 보낸 동생들에겐 또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