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 두 권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두어달 걸렸을까. 버겁다 이젠. 내 다시는 이런 벽돌책을 읽지 않으리다.
결국 ‘미쳐서 살았고 제 정신으로 죽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이 되는 돈키호테. 과연 성경에 이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다움이 느껴진다.
큰 숙제(?)를 마무리 한 것 같아 오늘은 소설 원고 작업을 덮어두고 게임을 켰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함께한 스타크래프트를 잠깐 하고 연이어 스트리트 파이터와 보글보글을 했다. 보글보글은 둘이서 같이해야 제 맛인데, 혼자 살다보니 이게 영 별로긴 하다. 별안간 고전게임의 숨은 고수인 엄마를 초대해야겠다.
곁에는 선물 받은 화이트 와인과 참외, 토마토를 준비해 두고 나는 하염없이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보글보글은 주인공 공룡 캐릭터와 빌런들도 귀엽지만, 배경음악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 소절만 들어도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시간이 지체되면 흰고래가 등장하는데 그에 따른 배경음악 역시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오늘은 60판즈음 갔을까, 보너스로 얻은 목숨 갯수도 다 까먹은터라 거기서 끝이 났다. 시간은 1시간 정도가 흐른것 같고, 와인은 반병이 남았다.
신기한 일이다. 방금 1시간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떤 걱정도, 시름도 없었던거다. 그저 물풍선을 빌런들에게 빨리 쏴서 터뜨릴 생각만 했고, 영어 알파벳으로 된 풍선들을 모아 보너스를 얻을 생각만 가득했다.
이런 파괴적인 집중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나저나 날씨도 좋은데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좀 걸을까. 그래 걷자. 번화가를 가로 지르니 앳된 청년들이 많이 보인다. 예쁘고 우람하다. 활기가 넘친다. 인두겁를 쓴 듯한 나와 같은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사는 모습은 이런 것이어야 했다. 적어도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다가오는 명절엔 엄마와 누나네를 데리고 서울에 몇일 머물다가 올 예정이다. 이제 곧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되는 조카들에게는 명문대 캠퍼스를 구경시켜 주고 싶고, 엄마랑 누나에게는 백화점에 들려 명품가방을 하나 사주고 싶다. 아니다, 엄마는 옷이 좋을까. 곧 겨울이니까 캐시미어 스웨터는 어떨까.
난 여전히 모르겠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기실 여름은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