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즈음 어느 날 연이 닿았다. 내 책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나는 사인을 담아 알려준 주소로 내가 쓴 책들을 보내드렸다. 이 후 메일이 왔다. 기헌님의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고, 예쁜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10년전 아버지가 췌장암 투병을 하시는 동안에 나는 암과 싸우는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서울 아산병원 암병동의 환우,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와 슬픔에 잠긴 우리는 서로의 위로가 되어주었고, 손을 잡으며 함께 울었다. 채 1년을 못버티고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명을 달리 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버텨냈다.
새벽녘 병원 건물의 모든 불이 소등된 후 휴게실에서 혼자 서럽게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손잡아 준 간호사분도 또렷히 기억할 수 있다. 아버지가 이제 보름 정도 밖에 살지못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나에게, 전혀 모르는 사람의 위로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었다.
필승쥬, 본명 강승주(32세).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루게릭병으로 온 몸이 굳어버린 그녀다. 이 후 유튜브로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 새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밝고 명량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눈만 깜빡인 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슬픈 표정 짓지 않았다. 어제, 이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까지도 그랬다.
내 책이 그녀의 멈춘 인생에 한 줄기의 희망이 되었을까. 아닐거다. 그녀로 인해 희망을 본 건 되려 나니까.
10년 전 새벽 어느 간호사로부터 받은 위로는 나를 아픈 사람들에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위로는 암과 싸우는 사람들을 거쳐 승주씨에게까지 닿았다.
그런데 말이다. 내 의지는 이상하게도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더이상 뻗어나가질 않는다. 지구 어딘가의 한 모퉁이에서 당신을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그녀에게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의 위로는 당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걸, 나만이 알고있는 그 명징한 사실을, 나는 전하지 못했다.
삶의 마지막 끈을 잡고 버텨내려는 사람들을 떠나 보낼때면 그래서 아프다. 특히나 비처럼 맑은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러해진다. 맑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화장을 하고 명품으로 치장을 한들 맑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삭막해진 우리 주위를 둘러보시라.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고 했다. 승주씨의 향이 그렇다.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느새 나의 가을에도 흩날린다.
맑고 예쁜 승주씨, 부디 편히 쉬시길 바라.
P.S 오랜만이죠 승주씨. 승주씨가 좋아했던 한 권의 책 <죽기싫어떠난30일간의제주이야기>를 쓴 임기헌 입니다. 오늘의 제 마지막 인사가 승주씨가 계신 하늘에도 닿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책 많이 쓰도록 노력할게요. 그동안 고생 참 많았어요. 지평선 너머로 맑은 바람이 불어오네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