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르는 번호로 부고 문자를 하나 받았더랬다. 당연히 스팸인 줄 알고 열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점심무렵에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과거 오랜시간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다. 이 동생 번호는 저장이 되어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얼마전에 폰번호를 바꿨다고 한다.
”오빠, 어제 문자 보냈었는데,,“ 하고 그녀는 말끝을 흐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나는 이 후 이상하게도 할 말이 별로 떠오르질 않았다. 농담 따먹기를 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슬픔이 공감되지도 않아서 어떤 위로의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가 않았다. 연락을 안한지가 대강 추측해봐도 3년은 넘은 듯해서다.
동생은 그런다. 오빠 책도 잘 읽었고, 인스타그램도 가끔씩 잘보고 있다면서. 그러고 금세 사장될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몇마디 주고 받다가 배달주문 때문에 전화를 끊었다.
잘한걸까. 이 친구는 나한테 전화를 하기 위해 얼만큼의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나는 하루하루 대강 살며,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한가지의 원칙은 고집스럽게 생각을 한다. 1년간 교류가 없는 사람과는 관계를 안한다는 원칙이다. 그 교류라는 건 사소한 전화통화가 될 수도 있고, 편지, 술 한잔, 혹은 커피 한잔 등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스킨쉽을 뜻한다.
그런데 2~3년전부터인가 나는 연락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친구 둘, 동생 한 둘, 선배 서너명 등등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하고만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지 그외에는 없다. 더이상 새로운 관계를 원치도 않는다. 과거에야 헤어진 여자친구한테도 술만 취하면 ”자니?“하고 문자를 보내며 관계를 이어나가려 애썼지만, 이제는 그런 애증의 관계조차도 실증이 난다.
이런 의미에 근거한다면 갑작스럽게 부고라며 연락온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걸까. 내가 설마 갈거라고 생각을 했던걸까?
아니다. 일말에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마라. 어디선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속상하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라.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충실하다. 나도 매한가지로 그렇다. 쓸모가 다해지면 소원해지고 끝내 버리거나 버림 받는다. 자연의 섭리 같은거다. 태양계 저 끝에 있던 명왕성이 왜 행성의 지위를 잃었겠나. 거리도 워낙 멀고 태양계에서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있다가 안동으로 귀향하면서부터 쓸모를 다해진거다. 그로부터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말하자면 기업가, 고위공직자, 법률가, 유명인 등등 취재하는 동안에 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겠나.
그런데 나는 아버지 장례식이며 내 결혼식(이혼을 해서 면목이 없지만)에 아무도 초청을 안했다. 이미 퇴직을 한 뒤고 돈까스나 튀기고 있는 쓸모를 다한 내가 그들 입장에선 반가울 리가 있겠나. 교류하던 지인들이면 된거다. 그래도 식장은 사람으로 차고 넘치더라.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떠올리지 마시라. 본인이 슬프다고, 혹은 무척이나 기쁜 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싶다고 말이다. 평소에 필요한 사람이 되시라. 그게 아니라면 그 입 다물고 자신이 1년간 누구와 교류를 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시라. 1년 내내 손아귀에서 그놈의 폰을 한시도 놓질 않으면서 그 사사로운 문자 한통의 교류도 없다면 서로가 질색을 하고 연을 끊는 편이 제일 낫다.
나의 어린 시절 웃음 보따리를 선물해주셨던 전유성 아저씨의 장례식을 보며 관계를 생각했다. 선배며 후배며 장례식장을 찾은 모든 이가 진심을 다해 울더라. ”형님, 어디가요.. 날 좀 보이소..“ 하고 울부짖으며 숭구리당당 춤을 추는 김정렬 아저씨의 뒷모습은 어쩜 그렇게도 구슬퍼보이던지.
훗날 내 장례식은 앞서말한 몇몇 친구와 내 가족들만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삼일장도 필요없다. 하루면 족하다. 뼛가루는 명왕성이 바라보이는 어느 바다에 흩날려주면 좋겠다. 그 슬픈 행성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