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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01. 2022

꽃향기가 가득했을 당신에게

동방의 작은 반도는 사고 사흘만에 이렇게 또 둘로 완전히 편이 갈렸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때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 누가 희생이 되고,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만 아니면 된다. 오늘도 음식 사진을 찍어 올려야 되고, 예쁜 카페에 가서 인증샷을 찍어 올려야 되는데, 이태원 참사 따위가 이런 행위들을 옥죄니 그들이 화날만도 하겠다.


할 만큼 했고 책임질 게 없다는 책임있는 정부 당국자들의 말 홍수 속에서 나는 갈 길을 잃는다. 때로는 펜의 힘이 균형추를 맞출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오판이였다. 우리가 보는 모든 세상은 완전히 둘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치 못했다.


'1+1=2'라는 이견없는 정답도 반대편에서는 부정한다. '2'가 아닌 무언가를 끝끝내 찾아 윽박지른다. 우리 사는 삶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된걸까.


나도 어느덧 불혹이 넘은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고나니 젊은 친구들의 죽음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오늘처럼 청아한 맑은 날씨를 맞이하게 되니 마음이 더 무너진다.


사람들은 남의 나라 명절을 왜 갖고와서 이 난리들이냐고들 한다.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들도 10~20대때는 너른 잔듸밭과 운동장 등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를 분명 좋아했을거라고. 이태원에서 죽어나간 젊은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이였을거란 얘기다. 시대가 바껴 뛰어놀 공간이 달라졌을 뿐이지.


지적 방향이 잘못되도 아주 잘못된거다. 더불어 경찰과 지자체는 국민을 지켜주라고 존재하는 국가기관이다. 왜 그들을 탓하냐고 하는데, 일반 국민들이 그들에게도 의지 못한다면 누굴 의지해야 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조차도 어느덧 이런 논란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결국 사람이 싫어 다니던 대학원도 그만두고, 멀쩡한 회사도 그만뒀더랬다. 그리고 이혼까지. 이후 삶과 죽음에서 고민하던 찰나에 우울증 약을 한아름 챙겨 제주도로 떠밀리 듯 내려가 책을 썼더랬다.


그 후에도 나는 사람 속에 사람 없는 날을 언제나 생각했었고, 불혹이 된 이후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왔다. 그 방법 뿐이였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듯, 다시 제자리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완전히 잃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쓴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말했다.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펜을 놓는다. 그리고 적적한 가게에 홀로 앉아 오늘은 종일 음악을 들어본다.


꽃다운 나이에, 그 어느 때보다 꽃향기가 가득했을 당신들께도 지상의 이 음악들이 전해지길 두손모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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