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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08. 2022

하관(下棺)

할아버지 제사였다. 아버지가 안계시니 할아버지 제사도 오롯이 내 몫이 됐다. 서울에 있는 삼촌네와 고모네는 이번에도 오질 못했다. 숙모, 사촌동생들까지. 이젠 연락 한통이 없다.


뭐 괜찮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장손으로 태어난게 죄지, 다른 지점에서 굳이 불만을 찾을 필요는 없을것 같다.


문제는 우리 엄마다. 평생 한번도 빠지질 않고 명절과 제삿날을 챙겨왔다. 밤새 간병일을 하고 와서 아침부터 혼자 종일 그렇게 준비를 하는거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해도 화가 얼마나 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사가 또하나 늘었으니 엎친데 덮친격이 됐다.


유일하게 하나 믿고사는 아들래미는 이혼남에, 불혹을 훌쩍넘긴 독거노총각에,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앉아있으니 우리 엄마는 전생에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이번 삶이 이 사달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웬걸, 할아버지 제삿날은 항상 보름날이라 오늘도 보름달이 뜬 줄 알았더니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바람에 달도 반토막이 나 보인다.


엄마를 베란다로 불렀다. 그리고 달을 보라했다. 200년만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해주며. 엄마는 신기한 듯 웃는다. 나는 그 모습 조차도 아프다.


엄마도 당신의 엄마가 그리울테고, 8년전 떠난 당신의 남편도 밤마다 보고 싶을 거다. 퇴근 후 깜깜한 어둠이 깔린 집에 홀로 들어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는 삶을 원하지는 않았을거다.


작년 책을 쓰며 엄마 생각에 문인수 시인의 <하관>을 인용했더랬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죽을 죄라 치부되더라도 우리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책도 중고 장터에 다 내다팔고, 쓰다만 원고도 다 지워야겠다. 스산하다. 지구의 그림자가 우리 엄마집도 다 뒤덮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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