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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28. 2022

엄마와 제주도

"우리 아들 잘생겼네~"라며 엄마는 답장을 보내왔다. 늦은 밤 나는 얼큰히 취해 거리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앉아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전화를 걸었더랬다.


아들이 웬일로 전화를 다하고, 무슨 일 있냐며 엄마는 물어온다. "뭐 그냥,, 엄마는 별일 없지?" 이렇게나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엄마와 나는 이런 식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엄마, 나 제주도에 가서 살까? 제주도에 있는 어떤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면접을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거든. 근데 그 회사 본사가 제주도에 있어. 아직 사업계획서도 생각을 해야되고 절차가 많이 남아서 확정된 건 아닌데, 운좋게 합격이 되면 아예 이사를 가서 나 혼자 거기가서 살아보면 어떨까 싶어서."


엄마는 별다른 대답 없이 무슨 일이 있냐고 재차 되물어 온다. "아니 그냥. 오늘은 친구랑 점심 같이 먹는데 갑자기 아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밥 먹다가 울컥 해가지고,, 이게 무슨 식당에서 질질짜는 바람에 개망신을,, 하하.. 음,, 그리고,, 매번 이렇게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식당일을 하고 있으니 엄마나 엄마 친구들 보기에도 안좋은거 같고, 대놓고 이혼까지 했으니 엄마 입장이 얼마나 난처할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안동에 돌아와서 나만 열심히 하면 다 잘 될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다 망쳐버렸네"


통화를 계속 하면서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를 한 캔 샀다. 그리고 집 앞 벤치에 걸터앉아 엄마랑 한참이나 더 통화를 했던 것 같다. 기억은 없지만.


눈 떠보니 집이였고, 아침에 엄마로부터 문자가 한통 와있었다. "아들, 엄마는 너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렇지 않단다. 그저 니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해. 그렇게 제주도 가고 싶으면 가도 엄마는 괜찮다. 엄마 신경 쓰지말고 하렴. 사랑한다 내 아들."


새벽에 출근을 해야되는데, 엄마 문자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작년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안정제를 한움큼 먹고서야 출근 준비를 한다.


베란다 문틈 사이로 소란히 스며드는 찬 바람에 옷장을 열어 무척이나 두꺼운 옷을 꺼냈다. 그러다 어제 또 조용히 집에 들려 밀린 빨래와 방청소를 해놓은 엄마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냉장고에는 먹지도 않을 새반찬들이 가득했다.


나는 이런 날이면 그 무엇보다 죽음을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다음 세상엔 그 무엇으로도 다시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함께 담는다. 언제나 죽음은 내 삶의 디폴트값인 것만 같다. 그래프의 기울기는 우하향쯤 되겠다. 그렇게 점점 비스듬해져 간다.


날씨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는것처럼 많이 차갑다. 설레이는 크리스마스도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우리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어땠을지, 우리 엄마도 아이처럼 설레이지 않았을지, 무심했던 나는 이제서야 덤덤히 생각을 해본다.


올해에는 예쁜 옷을 차려 입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호텔에서 엄마랑 와인을 한잔 마셔볼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캐시미어 스웨터는 어떨까.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크리스마스를 빌려, 우리 엄마에게 사랑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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