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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09. 2023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은 새벽녘 잠에서 종일 뒤척이다 새초롬히 눈을 떴다. 칠흙 같은 방안의 어둠에서 폰을 찾아 헤맸고, 침대와 벽 사이 틈으로 떨어져 있던 폰은 새벽 4시를 향하고 있었다.


어제는 집안 곳곳에 수북히 쌓인 먼지들을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한 뒤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찰나의 하루가 먼 과거의 일 처럼 느껴졌다. 요란한 꿈에 투시되어 몇광년의 차원을 넘나들고 온건지도 모르겠다.


잠들기 전까지 읽다만 책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였다. 저자인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전도유망한 엘리트 출신으로 갑자기 회사를 때려치우고 태국의 한 사원에 들어가 스님이 된 이다. 성취한 모든 것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이후 17년만에 고향인 스웨덴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는 1년 6개월간 우울증을 앓고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17년 동안 수련을 했음에도 삶의 공포와 불안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하게 된다.


"다시는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할 거야. 가족을 이루지도 못할 테고, 직장을 구하지 못할텐데 집이나 차를 살 여유가 생기겠어? 아무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겠지. 영적 성장을 위해 17년 동안 공을 들였는데, 겨우 이 모양 이 꼴이로군."하며 그는 탄식한다.


내 처지와 너무도 맞닿아 있어서, 나는 밤새 그의 책 속에서 그의 삶을 웅변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저자는 2018년 루게릭 진단을 받고, 2022년 세상을 떠났다.


글쎄다. 나는 언젠가 아이를 낳고 사랑스런 아내와 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게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며 가정의 울타리는 더 견고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그러던 나는 5년전 이혼을 하고 42살에 접어들며 이제 현실적으로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불가능한 일이란 걸 쉬이 알게 됐다.


살아오며 ‘내 아이는 태어나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늘 가슴 한켠에 간직하며 꿈꿨는데, 이 또한 모두 허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해 지고 말았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싶다. 내가 그 동안 생각하고 가치있게 여겼던 모든게 틀릴 수도 있다는 작은 믿음 때문이다.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올리버 색스(1933~2015)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다. 그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고 설파하며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지각력을 갖춘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한 평생을 살았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모험을 즐겼습니다.”


모르겠다. 지극히도 평범한 하루를 또 살아내며, 어젯 밤 그 먼곳으로 슬픈 광년의 여행을 다녀오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죽음을 잊지 않을 때 삶이 온전해 진다는 것. 그 죽음은 이제 나에게도 너무나 가까이 와버렸다는 것.


잊고 싶지 않은 일들만 가득한데, 우리는 오늘도 갈등과 반목으로만 균형추가 기울어 가는 기분이다. 그 균형추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살아가는 내가, 이 아름다운 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남아 있을까. 지구처럼 동그란 미소 짓는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천상병 시인의 말을 빌려, 훗날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을 천사들에게 이 말 만큼은 꼭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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