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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11. 2023

글에도 습작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게"하며 나는 언제나 다짐 했었다. 일본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열심히 하겠다"라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즉 “목숨 걸고 하겠다”란 의미와도 같다. 그러다 뜻밖의 결과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의 쓴맛을 맛보기도 한다.


요즘 책 원고를 써내려가며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자주 받곤한다. 임계에 다다랐는지, 내 능력의 한계인지, 몇번이나 썼다지웠다를 반복하는지도 모르겠다. 원고 날짜가 다가온 마냥, 혼자 그렇게 머리를 쥐어 뜯으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뭐가 문제일까. 매번 혼자 생각하고 혼자 시름하니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몇일전 서울의 한 방송국에서 아나운서 일을 하고 계시는 과거 직장 여선배께 전화를 드렸다. 책도 많이 쓰시고, 스피치 강연도 겸하시고 계셔서 내게는 멘토 같은 분이다.


얼큰하게 취한 나는 밤늦은 시간에 선배한테 넋두리를 한참이나 늘여놓았다. 선배는 그걸 또 다 받아주신다. 그리고 요즘 내가 쓰고 있는 원고를 메일로 한번 보내달라고 하신다. 내 글의 느낌을 알고 계시니 과거와 지금을 한번 비교해 보겠다며.


그리고 몇일뒤 다시 통화를 하게 됐다. 필력이 더 좋아졌다며. 글의 기교가 확연히 성장 된 모습이라며. 듣기 좋으라고 해주시는 말이라고 생각 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조언까지 덧붙혀 주신다.


"기헌아, 너의 글을 써. 너가 매번 너보다 나은 사람들만 쳐다보니까 너 스스로 너 글을 폄훼하는건 아닌지 생각해 봐. 내가 봤을 땐 너 정말 글재주 있어. 그러니까 남이랑 비교선상에 서있지 말고 너만의 언어로 너의 글을 써. 다음 책은 꼭 베스트셀러가 되길 응원할게. 화이팅이다!!"


그렇게 방송 들어가야 된다며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뭉클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였다. 나의 글을 쓴다는게 무슨 의미인지도 그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것 같다. 그저 기계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잘 쓰려고만 노력한건 아닌가 싶어졌다.


과거 언론사 시절 해외증권 연구원으로 발령 받아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새해 특별 보고서로 'R(Recession)의 공포'가 다가올거라는 우려 섞인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고, 해외 증시 보고서들을 참고해 경기 대침체가 발생할거라는 내용이였다. 그리고 새해에 나는 회장님 표창을 받았더랬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글의 거만함이 엄습하기 시작한 지점.


글이란게 그렇다. 사람마다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박완서 작가님이나 김훈 작가님의 글도 때론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 같은 과도기에는 어떤 객관적 지표가 요원해진다. 그래서 나는 몇달전 '토익'과 '토익스피킹' 시험을 봤더랬다. 대학생들 틈에 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재'티를 내지않기 위해 여간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는 토익은 700점대 턱걸이. 토익스피킹은 상위 두번째 클래스였다. 10년전 즈음 전국에 만점자가 10명 미만으로 나올 시기에 2번이나 만점을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며 다니던 수준이 이렇게까지 퇴보를 한거다. 이젠 어디가서 영어를 논하기에도 부끄러워졌다. 객관적 지표가 잘 말해준다.


글쓰기에도 이런 지표가 있다면 나는 아마 민낯이 다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글 안에서 현실은 편집된다. 제 눈에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그 중 어떤 장면이 쓸만하다고 생각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는 주관이 작용한다. 자신이 세계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제 글이 세계를 어디로 이끄는지 모른다면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배설과 섹스는 가려진 곳에서 할때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고도 했다. 나는 어쩌면 글도 그와 궤를 같이하는 듯한 착각 속에 살아온지도 모르겠다. 이젠 수면위로 나올 때다. 향유하며 배우며,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 듯, 그렇게 다시한번 '글담'을 차분히 쌓아올려 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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