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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12. 2023

강연이 끝나고

“긴 시간 동안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사회 곳곳에서의 파수꾼이 되어 우리 이 다음에는 꼭 정상에서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 돈까스 아저씨 임기헌 이였습니다.”


무사히 끝이났다. 연세대 교수님의 초청으로 2시간 반 가량 진행된 후배 대학원생들과의 만남.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내 이야기만을 잔뜩 풀며 학생들로부터 공감을 자아낸다는게 처음에는 너무 부담으로 다가왔다. 현직을 떠난지도 오래됐고, 이미 천재 소리를 들으며 명문대에 입학한 친구들한테 학문적인 이야기를 하자니 무의미할 것 같고, 이 친구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든게 내가 이 친구들보다 잘난건 대략 15년 정도는 밥을 더 먹었으니 그 경험칙을 얘기해 보는 거였다. 졸업 이후부터 취업 과정, 토익 만점 받는 비법, 해외 유학 생활 동안의 해프닝, 그리고 이 친구들이 제일 궁금해 할 언론사 생태계와 기자 생활 같은 것이였다.


이것도 따분할 수 있으니 회사를 갑자기 때려 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와 돈까스 장사를 하게 된 계기, 그리고 내 필살기(?)인 이혼 얘기와 우울증으로 제주도에 삶을 마감하러 갔다가 책을 써온 얘기들도 풀면 좋을 것 같았다.


반응은 예상 외 였다. 학생들 눈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강연이 끝난 후엔 질문 세례가 끝없이 이어져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과거 대학 강연을 종종 갔을때엔 ppt에 준비를 많이 해서 갔는데, 이번에는 메모 한장 없이 순전히 내 지나온 삶을 언어로 풀어내다보니 내 스스로가 삶을 복기해 보는 시간도 덤으로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마지막엔 성시경 노랫말을 인용해 학생들에게 한가지 당부를 했더랬다. “‘아픈 나를, 바라봐줘요’하며 주위의 많은 이들이 울부짖고 있어요. 멀리 있지 않답니다. 바로 여러분들 곁에 있을 수도 있어요. 많은 걸 바라진 않아요. 살아가며 아픈 누군가를, 부디 한번만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세요. 저는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5년동안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어서 학생분들께 결례가 되는줄 빤히 알면서도 이런 말씀을 드리며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이 후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강연은  끝이 났고, 나는 내가 쓴 책 몇권을 학생들에게 건네주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캠퍼스의 잔듸는 푸르렀고, 커플들은 손을 잡고 사랑을 나누며, 학업에 몰두하는 학생들은 한아름 책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졸업 시즌이라 센스 넘치는 현수막이 곳곳에 즐비했고, 학사모를 던지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정겨웠다.


오랜만에 찾은 캠퍼스의 낭만은 깊고 진했다. 어디선가 봄향기가 손짓하듯, 과거 대학생 때의 내 모습이 저 먼발치에서 잔상처럼 희미하게 다가오는 기분도 들었다.


이렇게 한 수 잘 배우고 나는 또 돌아간다. 이제 더 확고히 내 분수를 알고 겸손하게 살아갈 일이다. 여전히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지만, 내일 돈까스 고기 작업과 가게 오픈 준비를 하려면 나도 서둘러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야 한다. 내 직업은 대학가에서 어슬렁 거리며 낭만에 취해있을 한량이 아닌, 이젠 완연한 돈까스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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