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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22. 2023

이산가족 상봉의 명암

슬퍼하는 법을 알아야

“어머니, 막내아들이 왔어요..” 주름이 자욱해진 할아버지는 73년만에 그렇게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셨다. 전쟁통에 생이별을 한 어머니를 VR 영상으로 소환해 다시 만난 것이다.


<KBS 시사기획 창>에서는 오늘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뤘는데, 청숭맞게 얼마나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르겠다. 가족도 없이 혼자사는 돌싱에, 독거노총각 주제에, 이런 내 삶이 가엾기라도 했던걸까. 이산가족분들의 가족애가 역설적이게도 내 마음을 웅변해 주는것만 같았다. 뭣도 모르는 나를 말이다.


이산가족(離散家族). 한자뜻도 애잔하다. ‘떠날 이’에 ‘흩어질 산’을 쓴다. 떠남은 물론이고 흩어지기까지 한다는 뜻이다.


세계사를 보면 이산가족과 같은 대부분의 비극을 초래했던 상황들은 결국 정치에서 기인하여 전쟁으로 치닫게 됐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가해진 역사적 사실들을 보면 잘 알수 있다. 그 결과로 작게는 개인의 삶 붕괴, 넓게는 사회의 존립을 파괴하고 인간의 기본권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으며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다. 3년간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의 결과로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남북으로 갈린 휴전의 여파로 생이별을 해야하는 이산가족이 생겨나게 됐다.


주위 열강들의 지정학적 요소와 체제 이념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해 그들은 근 70년간을 여전히 생이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간간히 정치적 이벤트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기도 하나 너무 짧은 만남의 시간과 가족 확인 정확성, 일회성이라는 상수 등이 기대감보단 안타까움을 자아내곤 한다.


과거 남한의 어떤 할아버지는 행여나 북에 있는 딸에게 불이익이 갈까 싶어 신청을 포기했다고도 한다. 공산치하에 꽁꽁 싸매인 채 당의 간섭을 받는 그들에게 혹시나 어떤 불이익이 생길까 싶어 그랬다고 한다.


어렵사리 만난다한들 문제는 또 발생한다. 70년의 세월이 어릴적 천진난만한 아이가 아닌 주름이 자욱한 노인을 만들어 버렸다. 극한 감정의 토대 위에 희미한 기억의 습작을 불러내 공통분모를 찾아가지만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상봉의 시간, 그리고 이제 살아갈 남은 시간이 너무 적어서다.


70년의 생이별 후에 극적인 상봉을 한들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또 다시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한다. 그들에겐 두번째 생이별인 셈이다. 현실적으론 이별이 아닌 사별이 맞겠다. 한번 상봉한 이산가족은 차후 중복 신청이 안되기 때문이다. 가혹하리 만큼 슬픈 일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가기 어렵고 버려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만, 도움이 필요없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슬픔 자체를 알 수 없다. 슬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라고.


늙은 사람들에게 밤은 너무나도 길고 어두울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70년 동안이나 반강제적으로 슬퍼하는 법을 익혔다. 정치인들, 아니,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마음속 깊이 그들의 슬픔을 새겨보길 바랄 뿐이다. 부디, 슬퍼하는 법을 배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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