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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28. 2023

가재가 노래하는 곳

요즘은 퇴근 후 집에 오면 <시절인연>이라는 시리즈의 원고를 찬찬히 써내려 간다. 따뜻한 보리차를 머그컵에 따라놓은 채 고요한 방은 노트북 타자 소리만 분주하게 울려 퍼지는데, 그 소음이 나는 언제나 반갑다.


지금껏 <시절인연> 주제에 축적 된 원고는 워드 파일 300장 분량. 오늘은 연이어 ‘아빠와 함께 왈츠를’이라는 소제목으로 원고지 10매 분량을 추가로 써봤다.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그 균형추를 저울질 하다가 나는 오늘도 밤 12시가 다되어 넷플릭스 영화 한편을 켰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란 작품이다.


런닝 타임 2시간여가 번뜩 흘렀고, 나는 불과 2시간만에 한 인간의 대서사를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삶의 사각지대와 자연의 속성 같은 것이다. ‘습지는 죽음을 통달하고 있다’는 주인공의 나래이션도 내가 느낀 그 궤와 결을 같이한다.


결국 백발 노인이 된 주인공은 대서사를 끝마치고 원초적인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너머 아무도 찾지않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우리가 찾아 헤매는 ‘이상’의 그곳과도 같은 곳일지 모른다.


주인공을 통해 글을 익히고 쓴다는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도 다시금 생각케 된다. 비루한 삶에서 외로움과 곤궁을 견디는 힘까지도 한 수 잘 배운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밤이다. 별이 빛나는 밤이며, 별을 헤아리기에도 그럴싸한 밤이다. 오늘은 꿈속에서 살아오며 헤어진 그 모든 이들을 만나 “우리 봄술이나 한잔 하세”하며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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