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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Mar 11. 2023

낡은 일기장으로부터

서른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을 때 즈음 적었던 그날의 일기를 들여다봤다. (참고로 나는 20살때부터 지금껏 2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다.) 정확히 45살까지만 일을 하고 10억을 벌어들인 뒤, 그때부터는 세계여행을 다니며 남은 여생은 오로지 글만 쓰는 삶을 살겠다고 주절주절 적혀있다. 글자에 날이 선 걸 보니 의지 하나는 굳건했나보다.


그러다 중간에 예견치 못한 결혼을 하게 됐고, 나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온실속의 화초처럼 예쁘게 자란 막내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됐다. 카페를 하나 통째로 빌린 나는, 너의 삶을 단 하루도 지루하지 않게 하겠노라며 프로포즈를 했다. 그리고 양가 어른들께는 절대 돈 걱정은 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도 했다. 어릴때부터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터라 나는 언제나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 마음을 늘 가슴한켠에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1년만에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이혼에 이르렀다. 내 나이 37살 되던 해였다. 그리고 이혼은 금방 잊은채 혼자가 된 나는 다시 목표를 다 잡았다. 45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은 순조로웠다. 가게 두군데도 차질없이 운영이 됐고, 납품 사업도 그런대로 순항중이였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집도 얻게 되고, 과감하게 외제차도 구입 했더랬다. 그러다 코로나를 맞닥들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가게들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모두 내보냈다. 문제는 앞으로였다. 코로나가 2년 넘게 지속되니 뾰족한 묘수가 보이질 않았다. 그냥 하루벌어 하루사는 꼴이 되버린 것이다.


그런 삶이 계속되며 지쳐가던 나는 과거 슬픔에 잠식되어 깊은 우울증이 찾아오게 됐다. 그 우울증을 이겨낼 길이 없어 나는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다.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제주도에 발을 내딘 첫날, 나는 민박집에 짐을 풀고 애월 밤바다를 바라보며 넋이 나간채로 앉아있었다. 이제 무얼해야할지 막막한 마음을 부여잡고, 저 멀리 불켜진 오징어배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45살부터 쓸 책을 지금부터 쓰면 어떨지. 왜 그 생각을 안했는지. 그래서 나는 책을 쓰게 됐다. <죽기싫어떠난30일간의제주이야기>를 쓰게 된 발단이다.


그래도 뭔가의 갈증이 있다. 5년을 주기로 뭔가의 새로움을 갈망하는 버릇이 다시금 도진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참 많다. 그런데 어느날 출판사 대표님께서 나와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를 비교선상 위에 올리면서 말씀해 주셨다. 이기주 작가도 기자 출신이라 나와 글 느낌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이기주 작가의 책을 찾아 모두 읽어봤다. 내가봐도 잘 쓰신다. 무엇보다 글에서 스마트함이 느껴졌다.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 같은거 말이다.


책은 얼마나 팔렸나 싶어 알아보니 <언어의 온도>만 2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뭐야 이거,, 그럼 대체 수익이 얼마야..'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계산을 해봤다. 200만부 X 책값15,000원 = 300억. 여기에서 작가 수익을 15%로 잡는다면 45억. 말문이 막혔다. 이 책만 아니고 뒤이어 출간된 책들도 줄줄이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책 수익만 대강 100억이 넘었다.


이런 작가와 나를 비교 한다고? 하하,, 그저 웃음만이 맴돌 뿐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니지, 나라고 못할게 있나?' 하는 간교한 생각이 들었다. 첫 책도 나름 반응은 괜찮았으니,, 하는 우쭐한 생각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유명 작가들은 글을 쓸때 상업적인 생각을 하고 쓰는걸까' 하는. 책을 팔아서 경제적 부를 취하겠다는 생각 같은걸 애초에 하는지 말이다. 그들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상업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 편협한 생각으로는 상업적인 목적과 작가로써의 자부심이 교집합을 이루지는 않을것 같았다. 수학적인 밴다어어그램을 그려보더라도 자명하지 않을까 싶다.


야생화를 꺾어 책 속에 집어넣으면 어느새 말라서 책갈피로 변한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를거다. 그러면 그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게 되는데, 그걸 일본에서는 '오시바나'라고 부른다. 나는 언제나 이 '오시바나'와 같은 향기가 내 책에도 묻어나면 좋겠다고 바래왔다. 그런데 어느샌가 상업적인 물결이 내 바램에도 그을음지는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목표했던대로 45살에 내 바램을 이룰려면 시들지 않는 책갈피를 잠시 빼둬야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나 나도 간사해져 간다. 꿈속에서는 울지말라고 했던 너의 말도, 이윽고 찾아온 봄도, 오늘따라 참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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