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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pr 23. 2023

엄마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우리 엄마 쉬는 날. 무얼할까 고민을 하다가 포항 누나네로 향했다. 포항-안동 간 거리는 차로 2시간. 그 사이 차 안에서 엄마랑 참 많은 대화를 나눈다.


때론 속죄를 하기도 하고, 내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한다. 얘기를 거슬러 가다보면 보릿고개 시절을 정면으로 겪은 우리 엄마가 무슨 잘못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우리 엄마의 눈과 귀가 되고싶어 때론 열심히 공부도 했는데, 다만 결국엔 패배자가 되고 말았는데, 이건 또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억울하고 분통하지만, 내 나이 불혹이 되서야 이 모든게 순리인 걸 알게도 됐다. 부잣집 아이들을 이길 방법은 애초에 없었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건 철부지 시절 선생님들의 말장난 뿐이였단 것도 잘 알게됐다.


계절마다 이번에는 또 어디 값비싼 곳으로 여행을 갈지, 오늘 저녁은 어떤 만찬을 꾸려 인스타에 드러낼지, 이런 사람들 틈에서 나도 지지 않으려 애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당신의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지, 하는 을씨년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사람들과 융화되긴 어려운거 같기도 하다.


우리 엄마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가 그래도 되는 줄 알며 쉬이 살아온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러면 안됐는데. 여기 심순덕 시인의 시에 그 마음을 담는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ㅡ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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