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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May 10. 2023

우리, 공부합시다

어제는 늦은밤 1980년대 홍콩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객잔에서 술을 한잔 했더랬다. 테이블은 3~4개가 전부였고, 스피커에서는 우리가 그 시절 즐겨들었던 <화양연화>, <중경삼림>, <첨밀밀>등의 OST가 흘러나왔다. 가사는 모르지만, 음과 리듬은 분명히 알고 있는, 어느새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가게 이름과 더불어 벽면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한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자를 모르면 가게 이름을 알수조차 없음에, 나는 괜시리 실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기여코 질문이 들어온다. 저 벽면에 써있는 4음절의 한자가 무슨 뜻인지 아냐며. '치! 나 이래뵈도 한자1급 자격증 소유자야!'하며 위세당당하게 한자를 들여다봤다.


그렇게 계속 들여다봤는데,,, 도무지 마지막 한음절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관'인가,, '로'인가,, 뭐지... 애초에 모르는 한자어는 분명 아닌데 무지해진건지, 까먹은건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학창시절 한자공부를 할 때 무작정 외우는 방식보다 부수와 형상을 그리면서 한자를 익혔던 것 같다. 그래서 부수를 통해 어려운 한자 뜻들도 곧잘 유추하곤 했는데, 그동안 얼마나 공부를 안했으면 이 조차의 뜻도 모를까 하는 부끄러움이 마구 들었다.


언젠가 조카가 학교에서 배운거라며 나한테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사자성어 뜻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면서도 모른척을 해봤다. 그러더니 조카가 뜻을 알려준다. 사전적인 뜻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둔다는 뜻이다.


그즈음 나는 조카에게 되물었다. 그럼 이 사자성어 유래를 아냐고. 이 유래를 삼촌이 ’영어‘로 설명해볼게, 하며 나는 공자(Confucius)를 들먹이면서 설명을 해줬던 기억이 있다. 조카는 토끼눈이 되어 놀란다. 나는 말했다. "삼촌이 돈까스만 튀기고 술만 먹는줄 알았지? 하하~ 그러니까 예랑이도 공부 열심히 해야 돼!!"


한자는 이토록 우리 삶속 깊숙히 스며들어 있다. 우리말 자체가 한자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은 물론이다. 가령 우리가 매일 신는 '양말'도 한자어다. '洋 큰바다 양'에 '襪 버선 말'을 쓴다.


더불어 변호사, 검사, 판사, 의사 등등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진 직군의 한자어 '사'자도 모두 다르다. 한자를 알아야만 그 직업들의 의미도 더 명확하게 알수 있는 것이다.


어제 내가 한자를 이토록 몰랐다는 걸 깨달으며 앞으로 강연을 할 때나 후배들 앞에서 한자 공부를 강조하지도 못하게 됐다. 그토록 한자 공부를 강조한 과거의 나날들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 모르는건 어쩔 수 없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는 건 진정 몰명진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 몰명(沒明)지다는 말은 제주 방언으로 멍청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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