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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n 06. 2023

“틱낫한 스님, 마음이 뭐에요?”

이상하리만큼 무기력해 질 때가 있다.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고 있고, 밤낮은 하루도 엉클어짐 없이 교차하며 빛과 어둠을 선사하고 있는데, 내 안의 우주는 그 자생력을 종종 잃곤한다.


자신을 꼭 닮은 아이를 보며 기뻐하는 부모들의 모습과 사랑이 영원할 것 처럼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 속에서는 나 같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기력증이 스며들 틈이 보이질 않는다.


매일매일 아침은 먹고 다니냐며 '따뜻한' 잔소리를 늘여놓는 엄마와 '짜증' 섞인 투정을 내는 내 모습은 4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도 않아 보인다.


결국 매일이 똑같았다. 그 속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다가 환희를 만끽하기도 하고 좌절도 했지만, 결국은 견고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근 한달간 책도 보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다. 밤낮으로 오직 넷플릭스만 보고, 영혼없이 유튜브를 뒤적이기도 하며, SNS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염탐하기도 했더랬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면 나도 행복할까 싶은 마음에 그렇게 어거지로 해본거다. 계획했던 미국 경비행기 파일럿 연수는 갑자기 의미를 느끼지 못해 쉽사리 포기해버렸다.


편하긴 했다. 세속에 유린된 그 무언가의 것들과 타협을 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창의나 노력 따위가 없는 삶을 산다는게 이토록 즐거운 줄 몰랐다. 부단히 노력하는 1%의 지구의 천재들이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우리는 춤추고 웃고 떠들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다만 불행히도 그런 삶을 살아내지 못한 내 안의 우주에서는 늘 이런 생각이 지배 했더랬다. '사람들은 뭐가 저렇게 좋을까' 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며, 때론 여행을 하며 사람들은 해방을 꿈꾸곤 한다. 잘됐으면 하는 무언가의 특별한 목표도 없는데 '모든게 잘될거야' 하며 주문을 되뇌이기도 한다.


그럼 잘되면 뭐가 좋은걸까? 나는 연이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세계 정복을 꿈꾼 나폴레옹, 중국을 통일하고 불멸의 삶을 갈망한 진시황,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마릴린 먼로도 잘됐으니 좋았을까.


글쎄다. 마치 맹탕 같다. 맹탕에 소금 한 스푼 풀었더니 그 맛에 흥이 나는, 결국은 맹탕일 뿐인데. 쇼펜하우어가 살아생전 그토록 사람들에게 읍소했던, '삶은 슬픔 뿐이다, 살 가치가 없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살아가야 한다. 빤히 알면서도 소금 한 스푼의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100년 뒤, 지금 동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소멸한 뒤 다음 시대의 사람들은 '소금별'에 살아가는 거다. 쇼펜하우어나 나 같은 염세주의자들은 발 디딜 틈도 없는 그런 세상이어야 한다.


사는 동안 단 하나의 질문을 할 수 있다면, 굽어흐른 '마음'에 관한 단상일거다. 삶은 지옥에서 하는 꽃구경이라 했는데, 훗날 지옥 가는 길목 어귀에서 소금별을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마음이 뭐에요?" 하며. 그 대답은 가급적이면 틱낫한(釋一行) 스님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거라곤 숨쉬며 산소를 탐하고 밥 밖에 축낸게 없는, 아무 의미 없었던 하루가 이렇게 또 흘러간다. 이 하루가 벌써 42년이나 모였다. 웬걸, 오늘 햇살은 유난히 맑고 기온은 적당하게 느껴졌다.


500년전 조선시대에도, 기원전 어느날도 오늘과 같았을거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거다. 사랑, 꿈, 그리움, 그리고 별, 바람, 햇살까지.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죽어도 될 이유가 없다면, 우린 뭘 위해 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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