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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n 04. 2023

6월의 그 집

집 지을 땅을 알아보고 다니다가 아는 형님이 짓고 있는 집터를 가보게 됐다. 이 형님도 가족들과 줄곧 아파트에 살다가 나처럼 집을 짓고 살고싶은 로망이 있어서 나오게 됐는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터울이 나보다 몇곱절은 빨라 보인다.


90% 정도 완공이 되어가는 집은 아담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당에는 큰 팽나무가 자리하고 있었고, 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아름드리 바위까지 들여다 놓았다.


형님이 보수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바위 위에 잠시 누웠다.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이 팽나무와 마주쳐 내는 소리는 자연과도 사뭇 닮은듯 했다. 바위에 한참을 누워 생각했더랬다. "아~ 좋다!"하며.


언제나 꿈꿔왔던 내 삶의 마지막 공간은 이곳과 맞닿아 있었다. 믿는 종교는 없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하는 그런 영광의 시기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려본다.


글을 쓰고 소를 키우며 마당을 가꾼다. 텃밭의 채소들이 자라면 지인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계절마다 작은 파티를 연다. 지독히 외로울 때면 기타를 꺼내 외로움을 노래하는 것이다.


벌써 6월이다. 속도를 내야겠다. 52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56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 유전자는 50대 어느즈음에 그 생명력을 다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결 낫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사형 전 마지막 5분이 주어졌을 때 “후회할 시간도 부족하구나! 난 왜 그리 헛된 시간을 살았을까?”라고 절망했는데, 나는 후회할 시간이 10년 정도는 더 남아있으니 더할나위 없으리라 여겨진다.


머리맡으로 6월의 바람이 분다. 그 결이 참으로 곱다. 형수님이 내어준 메밀차의 찻잎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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