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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n 13. 2023

나의 면접 일기

작년 제주도에 위치한 카카오 본사 입사에 최종 탈락 하면서 '내 역량은 여기까지구나'라는 좌절을 맛본 뒤 이번에는 될까 싶어 대구에 위치한 지역 언론사에 또 이력서를 넣어봤다.


취업에 목메달고 열심히 하는 분들께는 참으로 염치없게도 자영업을 영위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모양새가 영 볼성사납게 보이기도 할거 같다. 그래도 신입이 아닌 소수의 경력직군이니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해본다.


이력서는 무사통과가 됐다. 이후 찾아온 실무면접과 임원면접. 준비한 ppt를 들고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은 뒤 대구를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젊은 활력소 등이 옹골차게 느껴졌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졌다. 시선 너머로 보이는 모든이가 젊게 보이는거였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 늙은 나이가 됐나,, 싶은. 더불어 내가 이들 틈에서 이제 경쟁력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덤으로 들었다. 지식은 빈약해지고, 배불뚝이 아저씨가 다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가 반은 꺾인 채로 임원실에 다다랐다. 젊은 날 무수한 기업들 면접을 보러 다니던 그 느낌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문앞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긴장감은 더할나위 없었다.


무대에서, 그리고 강의에서도 떨지않던 내가 왜 그렇게 떨렸는지. 나는 준비한 ppt를 켜고 마이크를 들고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그동안 기자로써의 경력과 이력 등을 차례로 설명한 뒤, 합격 시 이곳에서의 계획 등을 준비한대로 말씀을 드렸다.


첫째로 나는 과거 국제 포럼 주최 경력을 되살려 대구 지역의 포럼과 세미나 등을 정례화 해 지역 사업과 경제에 주춧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른바 파수꾼 역할이다. 수도권보다 취약한 정보와 커뮤니티 형성을 당사인 언론사가 주최가 되어 가교 역할을 하는거다.


둘째는 정치부로 부서 배치를 받을 경우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4주년 즈음 단독 인터뷰를 따오겠다고 어필했다. (메이저 언론사와의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 홍시장 인터뷰라니..?) 그렇다. 일단 면접이기 때문에 나도 막 지르고(?) 본거다. 그분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나도 자신이 없다. 그래도 스타 정치인을 시장으로 둔 대구의 이점을 잘 살려 그분과 상조할 길을 찾아볼 필요는 있었다.


셋째는 당사 선정 한 주의 자영업자를 지정해 인터뷰를 한 뒤 기사를 실어주고 싶다고 했다. 지역 재래시장 활성화와 당사 이미지 홍보에도 상호 이로운 점이 많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기자로써의 역량과 필력 수준에 관한 질문이 오고갔고, 나는 과거 경제언론사에서의 경력을 반추해 적절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더랬다.


마지막은 연봉과 결혼 유무, 그리고 주거지 등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연봉은 이력서에 희망연봉을 적긴 했는데, 조금 터무니 없이 느껴지셨나보다. 결혼은 이혼을 했다고 하니 이또한 임원분들 얼굴에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거지는 회사 근처에 작은 원룸을 구하겠다고 했더니 불편한 기색이 확고해지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면접은 그렇게 끝이났다. 그리고 몇일 뒤 담당 팀장께서 직접 전화가 오셨다. 실무자급에서는 경력도 좋고 다 만족하는데, 임원분들 중에 조금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고.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끝!


탈락했다고 해서 별로 감흥도 없었다. 이미 대략적으로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연봉과, 그리고 이혼을 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분위기가 싸해졌음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평생 주홍글씨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야되는 이놈의 이혼 경력을 어찌할 도리가 없나보다. 그래서 이럴때면 전처에게 가끔은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데, 여전히 언론에서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그 친구는 여자로써 어떨까 싶은. 후회라기보단 도의적 책임 같은거다.


고향 안동으로 귀향할 때에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기분이 들었는데, 다시 떠날려니 이토록 힘에 겹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에 길들여져있고, 풀뿌리 커뮤니티에 따라 계파가 갈리며, 보릿고개 시절 선대 어른들께 땅이나 부동산 한필지씩 즈음은 물려받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 틈에서 내가 설 자리는 점점 사그라드는 기분이 언젠가부터 들었다.


그래서 조금더 다이나믹한 곳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마음껏 경쟁하고 조금더 배울 수 있는 곳이였으면, 하는.


잘못된 선택의 결과보다 더 슬픈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 선택들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한 꺼플이 벗겨지고 갈피를 잃은 나는, 이제 또 어떡해야 될까 싶다. 어쩌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것만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퇴근 후 돌아온 집안에는 적막이 흐르고 보지않는 TV와 읽다만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휴대폰 벨소리는 울리지 않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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