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름

by 임기헌

방구석 휴가 2일차 지금쯤 일본에 있어야 되는데 내 일정 때문에 가족들 휴가가 도륙나 버렸다. 초밥과 사케를 먹으며 여기가 일본이라 생각하여라,, 하며 환영을 심어주긴 했다. 대신 내년엔 더 멀리 미국 데리고 갈게!!


오늘은 다같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봤다.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 가본것도 처음이였지 아마.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조카들 학교 생활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봤다. 현직 학생인 조카들이 그런다. 정말이지 별의 별 엄마들이 다 있다며. 주말께 온 나라를 또 분노케 했던 맘충의 끝판왕,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의 엄마도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사람 사는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세상이 상식 밖이 된것만 같다. 극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근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거부감이 든다. 엄마를 비롯해 집안에 여자 밖에 없으니 신경이 더 곤두서나보다.


또 이렇게 한주가 흘러간다. 뜨거웠던 여름의 시간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이틀간 가족 향기가 그윽했던 집안은 진공 상태가 된 듯 허해졌다. 창밖엔 별 한점도 보이질 않는다. 여기저기 옷을 널브러 뜨려놓고, 혼자 진공 속에서 샤워를 하고 일찍이 누웠다.


일요일밤의, 텅빈 집에서, 나는 또 혼자가 됐다.


톨스토이가 말년에 남긴 명상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라는 책을 폈다. “혀끝까지 나온 나쁜 말을 내뱉지 않고 삼켜버리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료다”라고 책은 말해준다. 지난 한 주 동안 너무 많은 말을 내뱉은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마리 제비가 여름을 만들진 않는다’라고 했다. 수많은 제비가 선물해 준 여름이였는데, 그 여름이 이렇게 또 떠나간다. 나에겐 42번째 여름이였다.


안녕, 여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락처를 삭제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