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처를 삭제한 날

by 임기헌

어젯밤도 언제나 그랬듯 깊은 꿈을 꿨다. 금단의 사랑을 해도 혼나지 않고, 살인을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는 꿈속의 나라는 그래서 경이롭다.


어제는 꿈속에서 과거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죽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영혼이 되어 내곁을 맴돌며 본인의 억울함을 하소연 했다. 나는 영매가 된 마냥 그 친구와 동행을 했지만, 꿈속에서 만난 거리의 사람들은 그 친구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만난 그 친구의 어머니.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부 짖었다. 영혼이 된 친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울고 있었다.


그러곤 잠에서 깼다. 새벽녘 암흑 속에서 침대 옆 조명을 켜고 눈을 비볐다. 웬걸, 눈물이 고여있었다. '무슨 꿈이 이래,,' 찜찜했다. 꿈속에서의 눈물이 현실까지 이어지는 일은 겪어본 적이 없어서다.


폰을 들고 카톡에서 그 친구 목록을 찾았다.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아 2,000명이나 되는 카톡 친구 목록 전부를 훑었더랬다. 그때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자주 연락하는 친구라고 해봤자 2~3명 남짓인데 연락처 목록에 2,000명이라니... 저 멀리 기자생활 때 종종 뵈었던 전직 서울시장님과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분들의 연락처도 보인다.


아침까지 고민이 들었다. 폰이 무거워진 느낌도 들었다. 이 목록들을 왜 가지고 있었던걸까. 나는 별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폰을 초기화 했다. 가족들과 친한 지인들 번호는 모두 외우고 있으니 별문제 될건 없었다. 모임 따위는 밴드나 단톡방이 있으니 또한 문제될게 없었다.


그러고 다시 카톡 목록을 들여다봤다. 가족 포함 20여명이 남았다. 폰도 한결 가벼워졌다. 다 읽은 책들을 기증하고, 집안의 물건들을 미니멀 하게 바꾸는데만 골몰했지, 폰을 다이어트 할 생각은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나보다.


과거엔 사람이 자산인 줄 알았다. 지금도 그렇게 굳건히 믿는다. 그런데 6개월 이상 교류가 없다는 건, 이번 생에서는 앞으로도 아마 교류가 없다고 보는게 맞겠다. 간혹 경조사 때 수년간 생사도 몰랐던 이가 노심초사 하며 연락을 건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도 말았으면 싶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 빈 곳간에 사람을 채워넣거나, 부조금 따위로 살림살이를 보강하려는 행위로 밖에 보이질 않아서다.


친구 서너명, 선배 서너명, 후배 서너명, 비율도 어찌나 이렇게 균형이 잡혔는지. 이렇게라도 남은 이들로 이젠 내 인생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폰까지 미니멀 해지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선택과 집중'은 경제학에만 통용되는게 아니였다. 이렇듯 관계에서도 잘맞아 떨어진다.


한가지 걱정은 있다.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이 관계를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역행하는 꼬락서니가 적절한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제 '원나잇'이 좋아졌다. 모두가 생각하는 '하룻밤 섹스'에서 기인한 용어다. 남녀 사이에서는 그 뜻이 맞다. 다만, 이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이따금씩 왜곡되어 쓰여진다. 원나잇은 나쁜거다, 라는 의미로 곡해된다.


왜 나쁠까. 다 큰 성인이 서로 마음에 들어 하룻밤 섹스를 하겠다는데. 부모한테 허락을 안맡아서일까. 만약 한쪽이 거부하는데, 한쪽이 강압적으로 한다면 성폭행이나 간음의 '범죄'가 성립된다. 그러면 그건 나쁜게 된다.


그런데 둘다 원해서 하는 원나잇은 왜 부정이 되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도 툭하면 유교 운운하는 우리 민족 특유의 도덕성에 맞닿아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유교 국가에서 모순적이게도 불륜은 흔치않게 볼 수 있는데, 음지에서 둘 사이에만 일어나는 이런 다양한 형태의 섹스는 당사자 외에는 그 누구도 알 길이 없다. 섹스가 끝난 후 거리로 나온 당사자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차분하게 각자 갈 길을 간다. 나쁘지 않다, 본능에 충실 했으니.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욕구라고 보면 되겠다.


슬림해진 폰과 함께 원나잇을 꿈꾼다. 나쁜거 말고, 서로 호혜할 수 있는 '착한 원나잇'인거다. 30대때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선배들의 말을 거스르고 그 길로 들어섰다 파경을 맞았다. 40대가 되니 연애도 미친짓이란 걸 깨달았다. 이즈음되니 그저 4계절마다 동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눈이 맞아서 원나잇도 하고 그러는거다.


젊은 시절의 그 푸성귀 사랑은 어느덧 갈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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