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악볕에 갇힌 8월도 여차저차 흘러가고, 이제 올해도 4개월 밖에 남질 않았다. 빠르다. 그 옛날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나이듬에 따라 시간의 체감속도가 달라진다는게 예사의 말은 아니였던 것 같다.
보통 세밑에서 사람들은 한해를 돌이켜보고 다음해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중간즈음에 한번 복기를 해보게 된다. 이상한 습관과도 같은거다. 세밑에서 하게되면 이루지못한 목표들을 다음해로 또 미루듯 넘겨야 되지만, 중간점검을 하게 되면 보완하거나 수정이 용이해 진다.
작년 일기장을 들여다보니 몇가지 목표를 적어놓긴 했다. 먼저 제일 우선시 했던 미국 파일럿 조종사 과정. 올해초에 시험과 서류에 합격을 하고 과정을 밟으러 가려고 준비까지 해놓은 터였다. 그런데 집안에 일이 좀 생겨버렸다. 큰 돈이 필요로 한. 별 수 없었다. 선택지도 없었다. 그렇게 그 계획은 휴지장 처럼 날려보냈다.
다음은 두번째 책 출간. 현재 원고는 마무리 됐고, 편집 작업 중이니 이 계획은 무난하게 이루어 낼 수 있을것 같다.
또 하나는 책 50권 읽기. 현재 30권 정도 읽었으니 이 계획도 달성을 할 수 있을것 같다. 타인의 경험이나 지혜를 공짜로 득할 수 있는 책 읽기는 이 세상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순수익을 작년보다 곱절로 달성해보자는 것. 해서 생각해봤다. 나는 도대체 직업이 뭘까 하고. 돈까스가게, 식자재납품, 작가, 번역, 통역, 과외, 강연, 주식-부동산 투자.... 누가보면 사기꾼이 아닌가 싶겠다.
물론 어느 정도 수익이 꾸준히 된다. 코로나 때야 핑계가 좋아 '돈없다'는 구실이 먹혔지만, 지금은 그 조차도 민망해질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얘기한다. 지금은 많이 버는 달엔 대기업 임원정도 수익은 되는거 같다고.
그런데 이 말을 덧붙히고 싶다. 비슷한 벌이여도 보통의 가정과 나같은 1인 가정은 지출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100을 벌면 100 모두를 저축하거나 써도 된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가정은 다르다. 100 모두가 저축은 커녕 지출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잘 알수 있다. 다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진건 그들 선택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면 된다.
나는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아갈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경제적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더 여유있게 살아가면 되는거다. 단지 아내는 물론이고 자식조차 없이 평생을 혼자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와 고민을 안아야 되는 단점도 분명 있다. 예쁜 조카들이 나중에 자기들이 삼촌 옆에 있어준다며 다정한 말을 건네곤 하는데, 지금은 그 언어의 온기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먼훗날 늙고 병들었을 때, 어느 한 순간에 고통없이 심장이 멈춰버리는 축복이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통장 잔고는 0원, 부동산과 자동차, 자산 등은 모두 사회에 기부한다는 유서만 남긴 채, 저 광활한 암흑의 세계로 사라지는거다. 세상에 빈 손으로 왔으니 빈 손으로 가는거 뿐이다.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거다.
그러고보면 살며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게 됐다. 병든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고, 결혼 이후 가정도 건사하지 못했으니 엄마에겐 살아생전 갚지도 못할만큼의 불효를 저질렀단 것도 잘 알 수 있다.
영원한 사랑을 고백한 친구들과는 가슴아픈 이별이 잦았고,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급하게 돈을 꿔달라는 지인들을 매몰차게 대한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아픈 친구들을 어루만져주지 못했으며,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바로 잡아준 학창시절 선생님들껜 그 이후로 감사하다는 말 한번 전하질 못했다.
어쩌면 내가 사회에 암덩어리여서, 우리 아버지 몸에 암이 그렇게도 일찍이 기생한건 아닌가도 싶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보통 80세가 훌쩍 넘어가는데, 나에게 만큼은 그마저도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서른다섯살까지. 난 그때까지면 충분했다. 굳이 성탄절이 아니여도, 온 세상이 기쁨이였으니 말이다.
지금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그래도 생에 참 고맙다. 지저귀는 새들과 은행 한 닢,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의 별들을 모두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이 아름다운 행성 지구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행운이였다.
그제 뵈었던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잘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게 훨씬 쉽지 않다고.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내 남은 여생은 그 누군가에게 만큼은 다정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