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앞에서 찾은 진실

by 힐링요트

마치 거대한 암벽을 마주하는 듯했다.

다리 골절로 정형외과에 입원 중인 30대 여성, 우울증 때문에 나에게 자문 의뢰된 환자였다. 진료실에서 나와 마주 앉아 선 순간, 나는 숨이 막혔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오래전에 말라붙은 강바닥처럼 어떤 표정이 있었는지 흔적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웃는 표정은 아니더라도 슬프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체념한 표정을 넘어서 미이라 처럼 표정이 없었다.

마치 조명이 꺼진 전시장의 조각처럼, 그 어떤 자극이 와도 그녀의 표정은 천근의 무게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가슴이 조이면서 숨이 턱 하니 막혀왔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실명 상태였고, 청력도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불행히도 지능은 정상이어서 살아오면서 가족 간의 갈등, 온갖 불행한 일들을 불평등하게도 정상적으로 다 감내해야 했다.

보기에도 너무도 힘든 삶을 겨우 지탱해 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보는 우울증 환자와는 그 느낌이 너무 달랐다. 저분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 궁금하기조차 했다. 나 같았으면 엄두가 나지 않는 삶의 무게였다.

그녀의 우울을 넘어선 무감정, 지나온 삶의 고달픔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아득함이 느껴져서 내가 견딜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순간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나는 저 환자를 도저히 치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치료자의 한계 인정하기


나였다면 벌써 이 삶을 감당하지 못했을 텐데, 내가 감히 저 사람을 치료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모순이고, 기만이었다. 수만 근에 달하는 권태감을 어떻게 떨칠 수가 있을까.

그 순간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약만 주는 사람이 아니다. 처방전만 던져 주고 그 사람의 고통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소진도 없겠지만, 치료의 진한 보람도 없다. 환자와 싸우고 같이 간다. 치료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려 하면, 싸워서라도 교정하고 비로소 방향이 같아지면 같이 간다.

많은 환자와 같이 갈 수 없어 손오공처럼 머리털을 뽑아 분신을 만들어 보낸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 머리가 빠져 허전한 것은 머리털 분신을 많이 만들어서 그랬다고 믿기도 했었다.

하지만 저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단 1cm도 옮길 자신이 없었다. 그 고통의 바다에 발을 들이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짧고 깊은 고통과 동시에 연민이 느껴졌다. 나는 서서히 가운을 벗고 있었다. 치료자로서 실패했다.

의사용 커다란 의자에서 일어나 포로처럼 환자 앞으로 가서 죄인처럼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치료할 자신이 없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만일 선생님이었다면, 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을 치료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지만, 인정 할 수밖에 없어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제가 가운을 벗었으니 의사가 아닌 일반인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졌으면, 마음에 기쁨이 한 조각이라도 생기길 간절히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못 하지만 그래도 좋아졌으면 하는, 치료가 아닌 바람이었다.

그때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돌처럼 굳어 있던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위로 올라갔다. 그것은 미소의 가장 초라한 형태이지만 내게는 커다란 기적처럼 느껴졌다.

패잔병처럼 처진 어깨로 환자분을 안내해서 진료실 밖을 나오고 있었다. 현관문을 벗어나자 마침 저녁 무렵 산 위에서 시원한 바람이 얼굴과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날따라 유난히 더워 나와 환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는데, 그 순간 예기치 않게 불어온 시원한 바람은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고개 돌려 곧바로 물었다.

"시원하지요?"

그녀는 확실히 가벼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재에 머무르는 힘

그때 나는 알았다.

아무리 우울하고 힘들어도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 수만 있으면, 그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라도 쉴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우리가 뛰어내리기 위해서 높은 곳에 올라갔는데 누군가가 내 머리에 불을 붙인다면, 우리는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불을 끌 것이다. 그리고 큰일 날 뻔했다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그 불은 우리를 근심의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 현실로 이동시켜 주는 도구 작용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 환자분을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병원 안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같이 먹고 있었다.

"덥고 힘들지만 입 안에 느껴지는 시원하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기분이 좋아지는 맛도 느껴 보자고요."

그분은 퇴원해서 더 이상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일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줬다.

좌절에서 배운 두 가지 진실


첫 번째는 좌절을 인정하는 솔직함의 힘이었다.


"난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거짓 확신을 고집했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좌절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깨달음.

우리는 모두 한계가 있는 인간이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강한 척, 완벽한 척 하는 것보다 솔직한 연약함이 때로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두 번째는 현재에 머무르는 지혜였다.

과거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해 지금 이 순간에 내 앞에 있는 행복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발견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다면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의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마주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한계 앞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강한 척 버티며 혼자 끙끙거릴 것인가, 아니면 솔직하게 "나도 힘들다, 나도 모르겠다"고 인정할 것인가.

삶은 늘 무겁지만 그 무게에 짓눌려 현재의 작은 행복들을 놓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시원한 바람, 달콤한 아이스크림, 따뜻한 미소에 온전히 머물 것인가.

때로는 좌절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현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놓치지 말라는 것을.

그 작은 깨달음이 우리를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사례는 제가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을 바탕으로 합니다. 다만 개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내용은 각색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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