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도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
”도움이 필요하세요?“
어쩌면 그건 나였을지도. 정작 도움이 필요했던 나
특유의 직장인 마인드랄까, 우리는 복도를 서성이는 고객 한 명도 놓치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이유’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다가간다. 그것은 특수한 상황 혹은 응급 상황 아니면 그저 긴 비행의 지루함에 대한 일반적 반응일 수도 있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다행히도 대개는 그냥 비행이 지루하네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정말 다행이다. 나도 안다고, 크루들조차도 지루한 비행이라고 답한다. 스몰톡이 이어지고 물을 건네다가 과자는 어떻겠냐고 크루들이 하나둘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 친근함을 발휘하는 일은 사실 굉장히 어렵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크루가 되기에 적합하다.
나도 사실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말은 달라진다. 그들은 여행 혹은 귀가,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비행기를 탄다. 어떤 악의적인 의도도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들도 흔쾌히 대답을 한다. 물론 단순한 질문이 아닌 그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우리의 소임임을 아는 일은 드물 것이다.
풍족한 시대라서일까 자기를 돌보는 일에 소홀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외관을 치장하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남의 눈치 문화가 깊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슈퍼 하나를 가도 안 차려입으면 눈치가 보인다는 말을 듣는 판국이다. 그러나 내면을 돌보기엔 아직 멀었나보다.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도 홀로 여행 중인데 크루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면 감동할 듯하다. 그런 분들을 살핀다. 보딩 내내 표정이 안 좋은 분들도 있다. 여쭤보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일들을 겪으셨더라.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나도 타지에 살다보니 이런 일들이 정말 크게 와 닿는다.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에도 인스트럭터(소위 선생님)의 이런 경험을 공유받은 적이 있다. 그때 수업 도중 소식을 들었었는데, 다행히 항공사라서 바로 표를 끊어줘서 집에 갈 수 있었다면서 조금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항공사 다녀서 다행이라면서 그래서 자긴 이 회사가 좋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인스트럭터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더군다나 우리 회사는 중동에 위치해 가족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가족의 경조사를 예민하게 챙겨주는 편이다.
괜찮습니다. 나는 누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맘이 크기 때문이고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 마인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자기연민은 버린 지 오래됐다. 가끔 호르몬의 교란으로 그 감정에 빠질 때가 있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그대로 느끼는 편이다. 뭐든 참으면 안 되더라.
사실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더니 크게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첫번째는 가장 친한, 룸메였던 언니에게서였고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였다. 회사에서 혼났을 때에는 승객이 짐을 오버헤드빈에 넣으려다가 내 등에 내리꽂은 일 때문이었다. 보딩 중이었고 그리 승객이 많지 않은 비행이었는데 그런 일이 생겨버렸다. 순간 부사무장님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괜찮냐고 묻는데 또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까 엄청 혼내면서, 전혀 안 괜찮다고. 돌아가는 비행은(단거리 비행이었다) 데드 헤딩으로 가라고 추천하셨다. 데드 헤딩은 일을 하지 않고 승객처럼 가는 비행을 의미한다. 순간 나는 머리를 얹어 맞은 것처럼 놀랐다. 그래! 내 소중한 허리! 척추가 자리한 그곳에 그 무거운 캐리어를 맞았는데 괜찮을 리가 없지. 두바이로 가던 것이어서, 두바이에서 메디컬 팀이 달려왔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건
“너 저 승객을 고소하고 싶니?”
외국 항공사에 다니고 있는게 확실하구나 느꼈던 경험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듣지 못했을 법한 질문에 망설이다가 아니라고 했다. YES라고 할걸 그랬나. 아무튼 이 일로 회사로 돌아와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갔다. 참으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가장 친한, 여전히 내게 친한 언니 중 한 명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또 나의 삶에 변화를 이끌었다.
“남한테 기댈 줄도 알아야 해”
라고 하더라. 나의 그 습관적 괜찮다 라는 말에 언니가 놓은 일침. 사실 기계적으로 하는 말일 때도 있다.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는 방어막이랄까. 언니는 또 그걸 그새 잡아낸 것이다. 언니와의 룸메 생활은 아쉽게도 짧게 마무리되었지만 우리에게 그 추억은 큰 의미였다. 그런 고로 언니의 말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다. 부탁을 어려워하던 내가 차츰 부탁이란 것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팀 플레이어이자 개인주의자로 일해야 한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스스로 일을 할 때에는 개인주의자로, 또 도움이 필요한 일을 할 때에는 협동심을 발휘하는 팀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면접 질문 중 자주 묻는 물음이 너는 팀 플레이어야? 가 있다. 우리는 개인주의자이자 팀 플레이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부탁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게 된 건 나나 동료들에게 모두 유리한 변화라고 하겠다. 내가 홀로 뚝딱뚝딱 하는 것은 팀 플레이는 방해하는 일일 것이며 너무 기대기만 한다면 이 또한 우리의 목표를 해치는 일이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서로 돕고 사는 사회, 정말 멋지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이며 나의 도움이 그에게 이득이라면 참으로 뿌듯한 일일 것이다. 인간, 정말 사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