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으로 깨져도 아름다웠던
어떻게 그렇게 직업 찾기에 몰두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들 그랬으니까. 내 주위 그 누구도 직업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힌트를 던져주기는 했다.
내가 직업은 그저 나의 일부임을 알게된 건 멀고 먼 길을 돌아와서였다. 누구를 탓하거나 사회에 불평을 늘어둘 생각은 없다. 언제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들은 일어난다. 지금 내가 이렇게 끄적이는 말들도, 언젠가는 ‘아닌’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발견’을 통한 ‘성장의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떠났지만 나는 언제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결과는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언제나 내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해냄으로써 얻는 것이 있었다. 사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던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느냐 그것이 중요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 직업에 대한 나의 가치관 변화는 또한, 엄청나 결과다. 내가 이 회사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가치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게 직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나의 부차적인 이면이며 나를 대변할 순 있지만 그 전부는 아니다. 나는 나로서 온전하다.
생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회사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큰 행운을 거머쥐었다. 나는 그 행운을 아낌없이 누렸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이는 이미 성취한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나는 닥치는대로 일했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항공사들은 채용문을 굳게 닫았고 그 사이 나는 그저 집에만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내진다는 사실을 그때야 느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생각지 못한 일들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아직도 취업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이건 전세계적인 현상인 듯하다. 사실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상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더라. 나는 모난 돌처럼 좀체 그걸 해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좀 더 수월하게 살아나갈 수 있게 되었다.
승무원이란 직업은 굉장히 예측 불가한 일이다. 지키진 않더라도 계획 짜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사실 그리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불평하기보다 이에 적응하고자 했다. 유연성을 기른 것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으로 셔틀 비행을 할 때의 일이다. 셔틀 비행이라는 건, 장거리 비행에, 요하네스버그 - 더반 노선은 단거리 비행을 겸하고 다시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도하로 다시 돌아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국 노선으로 치자면 김포 - 제주 노선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 비행은 레이오버가 없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제주에서 손님들을 하기한 후 다시 손님을 맞이해 김포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한 시간짜리 노선에서 나는 요하네스버그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정말 놀라운 일은 유일하게 나 혼자만 요하네스버그에 수트 케이스(수하물 가방)을 다 싸 놓고 왔다는 것이다. 그날은 왠지 방을 청소해줬음 싶어서 그리 했다. 덕분에 더반에 불시착한 후 며칠 머물다가, 회사의 결정으로 바로 도하로 돌아가면서, 나만 유일하게 모든 물건을 지킬 수 있었다. 수트 케이스는 우리보다도 먼저 도하에 도착해 있었다. 수트 케이스와 안에 든 물건들을 확인하고 서명하면서, 몇몇 크루들은 잃어버린 물건들에 대해 불평했다.
아무튼 이런 일이 빈번하여 유연성을 기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지난번엔 뜻하지 않은 라호르 레이오버를 했다. 대개 라호르는 파키스탄의 영토로, 보통 단거리 비행으로 친다. 그러나, 어떤 행운이 내게 찾아왔는지, 안개가 가득하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강제로 나 외에 몇 크루를 레이오버하도록 지시했다. 우리에게 있던 것은 트롤리(기내 가방)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런 일이 내게 빈번했기에 나는 다행히 화장품도 다 챙겨서 다녔다. 하지만 기분은 어찌 할 수 없어 조금 우울한 상태로 동료 크루들과 무료 아침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서 또 미처 이륙하지 못한 옆동네 회사 크루들도 만났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게 사실은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모험심이 점점 강해진다. 다음을 무얼까, 예전처럼 크게 고민하진 않는다. 그저 하루를 일정하게 채워나갈 뿐이다. 언젠가 먼 훗날, 이를 돌아봤을 때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너무 열심히 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노력 중이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