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또 새로운 드라마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하다

by 유영하는우주인

사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물론 나도 취향이란게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챙겨보는 편이다. 하지만 대개는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 인생은 드라마랬던가. 좌충우돌 내 이야기를 쓰기도 바빴던 듯하다. 그리고 사실 드라마에 굉장히 몰입하는 편이라, 어쩐지 우리나라 드라마는 머리가 아프다. 지나친 드라마가 펼쳐진달까.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 와서 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맘을 이해한다. 사회는 발전하고 기술은 하루하루 더해져가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맘은 그 자리에 머문 듯하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를, 우리나라는 기술 발전이 지나치게 빨라 정작 문화 발전은 더디다고 했더랬다. 그런데 비단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회사를 찾는 승객들은 정말 다양한 국적을 지녔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역이라, 영어이기에 더 와 닿지 않아서 찾아본 적이 몇 번이다. 그래서인지 얼굴이나 말투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국적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나는 추측만할 뿐 승객이 국적을 직접 말하거나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입 밖에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승객들은 정말 형형색색의 이야기를 들고 온다. 장르는 다양하다. 드라마, 액션, 코미디 등. 더더욱 드라마를 볼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그건 때론 크루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불편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비행을 하고 난 후에 그 승객을 다시 만나는 일은 드물기에, 우리는 모두 비행기에 그날의 이야기와 피로를 탈탈 털고 간다.


외로움을 앞서 언급한 이유는, 때로 승객들은 지나치게 예민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랄까, 정도를 넘어설 때가 있다. 물론 이해한다. 긴 여행은 피로도를 높인다. 가는 길이든, 오는 길이든 그렇다. 우리도 이해한다. 크루조차도 레이오버에서 적응을 못해 잠을 설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라면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하기에, 나에게는 좀 의아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들이 도움을 구하는 것은 오히려 좋다. 도움이 필요해요 먼저 말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롭다. 우리는 승객의 상태를 살펴야 할 소임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놀랐던 것은 상공에서 드라마를 펼치던 승객이 도착하자마자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웃으며, 이 비행이 즐거웠다 라고 말하고 떠날 때이다. 가끔은 지킬앤하이드를 보는 듯하다. 그래도 다행히 행복한 비행이었다고 하는 말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비행이 크루에게 행복하진 않기 때문이다. 크루들은 최소한 퇴근할 때 무거운 맘의 짐을 지고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크루로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며 때론 그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처음엔 이런 일이 어려웠다. 탈탈 털고 가는 것. 하지만 이제는 잘하는 편인데, 이런 마인드이다. 승객이 행복하면 좋겠지만 불만족하여 내리더라도, 나는 최선을 다했음을 상기한다. 그것이 나의 팁이다. 사실 대부분의 직장 생활이 그런 것 같다. 퇴근할 때만은 즐겨줘야 다시 출근할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린 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웬만한 드라마에 놀라지 않는다. 크루도 취향이 있듯이, 우리도 가기 싫은 행선지가 있다. 무어라 특정하진 않겠지만 대개의 크루들은 한 달만 비행해도 그 노선을 꿰뚫게 된다. 하하. 그 노선은 특히나 드라마가 많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을 때도 있다. 물론 승객들의 맘을 백번 이해하지만, 지나친 드라마는 크루들의 피로도를 높인다. 이를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우린 한 명 한 명 다 귀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대접받고 싶다면 타인도 그렇게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에도 이런 드라마를 즐겨 찍는 분들을 뵌 적이 꽤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였다는 걸 여기에서 깨달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정말 무서운 사실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크루들은 드라마에 엮이지 않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긴장한다고 해서 이를 위협하는 어떤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으로 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모두가 행복한 비행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여기에서 알았다. 그건 어떤 면에선 슬픈 사실이다.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선 발전의 발판이라 생각한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떤 현상에 매몰되기 쉬운 성격인지라 그걸 배우고 납득하는 데에 꽤 오래 걸렸다. 생각이 많아서, 어쩌면 빨랐을지도 모른다. 값진 배움이다. 승객이나 크루나 비행 한 번에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배움을 제공하는 요소들인 것이다.


하기 시 승객의 웃는 모습을 볼 때에 참으로 맘이 편하다. 불쾌한 표정으로 타더라도 내릴 땐 다들 그렇게나 표정이 좋다. 소심한 승객도, 활발한 승객, 국적과 성별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밝은 미소가 또 우릴 웃게 한다. 승객이 하기한 후 바로 집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또 우리의 임무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그 미소와 감사하다는 인사는 우리를 웃게 한다.


가끔 맘이 여유로울 땐 오늘은 또 어떤 드라마를 목격할까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곤 한다. 하하, 이렇게까지 연차가 차버렸다. 아무튼, 드마라는 잘 안 본다. 여전하다. 나의 삶은 나의 삶. 드라마는 드라마다. 오늘도, 파이팅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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