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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Jun 07. 2024

외로움 보존의 법칙

나는 나의 키다리 아저씨


외롭다 외롭다 매일 말하는 사람과
살면서 한 번도 외롭다 말한 적 없는 사람은
둘 다 외로운 걸까?
둘 다 외롭지 않은 걸까?

앞의 사람은
외로움과 친구 된 걸까?
외로움 붙들고 떼쓰는 걸까?

뒤의 사람은
외로움도 마이너스해 버린 걸까?
외로움도 외로워서 죽어버린 걸까?

외롭다며 제 외로움 보여줄 상대가 있다면
그것이 외로운 걸까?
되려 외로움이 외로워지지 않을까?

아니면 외로워야 비로소 살아지는 걸까?
그래서 외로움을 한줄기 서광처럼
거룩하게 맞이하는 걸까?

혹시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외로움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건 아닐까?
앞사람이 외로움 다 가져가 버려
뒷사람은 외로움 한 톨도 못 얻은 건 아닐까?

그의 외로움에는
열역학 제2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걸까?
더 늙어버리면 외로움에도 냄새가 날까?
죽을 때쯤엔 외로움도 일없어 떠나 버릴까?

매일 외로움을 말하는 사람과
외로움이란 단어조차 낯선 사람은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생의 친구이니 친구든 아니든 친구인 걸까?

그렇다면 그 친구 아닌 친구에게서
외로움 한 자락 얻어와야 할까?
뺏어와야 할까?
친구니까 좀 나누어주려나?

외로움을 저 혼자 독식하고
온 세상에 외로움 흩뿌리고 다니면 그 친구
외로움 독재자가 되는 건 아닐까?
외로움 공산국가의 주석이 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외로움 공산국가의 인민으로서
외로움 공평하게 배급받아야 하나?
외로움 숭배하며 외로움 주석에게
''할아버지라는 애칭 지어줘야 하나?

아니면 이 뜨거운 가슴으로
그의 외로움 얼싸안고 질식시켜야 하나?
외로움이 죽는다는 보장은 있나?
외로움이 과연 뜨거움에 약할까?

되려 뜨거움 양성자와 외로움 중성자가 만나
수소 핵융합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뜨로움이나 외거움이라는
괴물 같은 별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

그때 태어난 에너지는 어디다 써야 할까?
깨달음 공화국을 건설하는 데에 쓸까?
태양과 임무 교대하여 지구 지키는 진리의 별로서
더도 말고 딱 일억 년만 빛나볼까?

아니면 우주의 태양이 되어야 하나?
우주라는 닫힌계의 태양이 되면
우주도 나처럼 때로 머리칼 버쩍 설까?

조금 멀리서 우주를 비추고
자주 사랑한다, 말해 주면
그러면 우주도 더 멋진 우주가 될까?

그러면 인간들도 진화 거듭하여
각자 우주의 태양이 돼버릴까?
아아, 모르겠다.


외로움도 배급받지 못하는 나의 가난함을
도대체 어느 주석에게 따져야 할까?



이상 금요 농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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