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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Jun 08. 2024

뱅크시 철학 담론

능동버튼, 그 우주 작동 원리

뱅크시는 그의 작품으로 종종 세상을 놀라게 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세인의 이목을 끄는 것에 오르가즘 느끼는 연쇄살인범도 있다. 건수만 있으면 언론플레이 일삼는 소인배도 있다. 또한 유행의 첨단을 걷는 트렌드세터도 있다.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선동에는 이 사회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쏘는 의미가 있다. 예술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것에는 분명 잠든 이를 흔들어 깨우려는 목적이 있다. 그들은 대중에게 때로 빅엿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슴 저 밑바닥 혹은 내장까지 짜르르 훑어지는 전율에 몸 떨어본 적 있는가? 당한 것이다! 우리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당하고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에 한 방 먹고 고흐의 압도적인 질량에 그만 넋을 잃는다. 클림트의 황금빛 중력에 빨려든다.

영화감독 역시 역설과 반전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마술사도 같다. 장사꾼도 소비자를 갖고 논다. 언론도 마찬가지! 범죄자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들은 이불속에서도 웃는다. 그것이 권력이다.

세간의 주의를 끄는, 상호작용의 양을 늘리는 그 모든 도발은 세상을 팽팽하게 살아있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예술가의 작품에  얻어맞는 것이나 범죄자의 행각에 털리는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사회를 작동시키는 권력게임이다.

위정자들은 자주 없는 건수도 만들어 내지 않던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자가 승자다. 반면 반응하고 지적하고 꼰대질하는 자가 패자, 당한 자, 뒷북치는 자, 선점당한 자다. 포지션이 있다. 행동하는 사람과 반응하는 사람 사이에 권력이 존재한다.

총을 쏘는 자가 될 것인가. 맞는 자가 될 것인가? 예술가가 될 것인가,  범죄자가 될 것인가? 당당하게 앞서 걷는 자가 될 것인가, 훔쳐보며 혀나 끌끌 차는 자가 될 것인가? 판을 짤 것인가, 구경꾼으로 남을 것인가?

레깅스든 야한 옷이든 입고 시선 끄는 자가 될 것인가? 눈 둘 곳 없다며 구시렁거리는 자 될 것인가?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 아는 자가 될 것인가, 그런 거 없다며 후수 두는 자가 될 것인가? 주체가 될 것인가, 객체가 될 것인가? 능동버튼인가, 수동 버튼인가?

세상은 능동버튼으로 작동한다. 지팡이 흔들며 호통 치는 노인처럼, 물정 모르는 촌놈처럼 영문 모르고 끌려다니는 자가 지는 설계다. 반응을 유도한다고 반응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당황하여 자기 소감을 말하는 자가 지는 게임이다.


주체가 돼라.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묻는다
포효냐 옹알이냐

주체냐 객체냐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보로디얀카에 그린 뱅크시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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