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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Jun 12. 2024

은둔자의 식사법

초간단 패스트푸드 초밥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요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배합초 넣어 식혀놓았던 밥을

한 주먹씩 쥐어(밥 : 샤리)


준비된 생선(네타)한 점씩 올리면 끝



이건 요리가 아닙니다

일종의 디자인입니다


인테리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재료는 보시다시피


피조개

성게알

새우장

전복장



맛은 퍽 상큼하고도 새초롬했습니다



요리에 큰 신경 안 쓰는 대신

재료에는 신경 좀 씁니다



가령 고추냉이는 생고추냉이를 쓰거나

생고추냉이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사용합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끝!



참!


아래 글은 읽지 않아도 됩니다.

통찰이 흩뿌려진 재미있는 글이지만 좀 길잖아요.

<패스트푸드 초밥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하시고 싶은 분만 보시기를 






권력적 음식

-박민설(절대신비)



된장, 간장, 김치, 와인, 치즈, 어란, 발사믹 식초

크래프트 방식의 에일 맥주, 혹은 생막걸리

위 음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발효 식품?

물론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위의 음식들은 바로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즉 권력적인 음식이다.

 

와인은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공간 필요하다.

시간도 물론이다.

 

빈티지 와인을 생각해 보라.

과수원부터 저장창고

그 수많은 오크통.

 

포도가 익어가며 오크통에서 보내는 세월.

와인 한 방울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숱한 사건들.

 

와인은 술이 아니라 사건이다.

 

무수한 시간과 공간

그 비밀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사건.

 

발사믹도 마찬가지.

포도를 으깨서 끓여 만든 이 소스는

오크통을 옮겨가며 최소 12년 이상

보통 25년은 발효시킨다.

 

치즈도 대표적 그것.

치즈 중에서도 파스타 위에 갈아서 뿌리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2년 정도의 숙성기간을 가진다.

우리는 파스타 위에 우주의 비밀을

소박하게 뿌려 먹는 셈이다.

 

어란도 만만치 않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엄청난 공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음식

 

5월에 잡은 참숭어의 알을 천일염과 간장에 염장

몇 시간마다 참기름이나 문배주를 발라가며

몇 달 동안 숙성시켜야 한다.

 

어란을 대하는 장인의 태도란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 정도

 

청주나 사케도 물론이지만

크래프트 방식으로 제조한 생막걸리에도

잘 어울린다.

크래프트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전통적 방식을 말한다.

 

대자본 개입이 25% 이상이면 크래프트가 아니다.

맥주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요즘의 생막걸리에도 쓰일 수 있다.

 

된장, 간장, 김치는 말해 무엇하랴.

종갓집의 그것을 생각해 보라.

이는 단지 음식이 아니다.

 

이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시간과 공간과

그 지난한 노력을 모두 소유한다는

그 모두를 장악한다는 것이다.

즉 권력 누리는 것이다.

 

반대로 시간이나 돈이 없을 때

우리는 패스트푸드 먹는다.

그 순간만큼은 권력 포기하는 것

 

저 높은 스카이라운지, 펜트하우스에서의 와인과

길거리 편의점에서의 김밥, 라면, 소주

그 사이에 권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초밥은 패스트푸드에 가깝다.

애초에는 생선과 밥을 발효시킨 슬로푸드였지만

발효 기간이 점점 짧아지다가 에도시대에 이르러

포장마차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 된 것

 

우리는 음식 먹으면서도 권력 누린다.

세계는 바로 그 힘으로 작동한다.

 

손님에게 어떤 음식 내어줄 것인가?

나의 응접실 보여줄 것인가?

 

그곳에 누구의 작품 전시해 놓을 것인가?

피카소나 고흐, 클림트나 에곤 실레 그림 걸려 있다면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라면

꽤 재미있는 대화 오고 갈 것이다.

 

뒤샹*의 변기는 어떤가?

뱅크시의 낙서라면?

 

아니라면 이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어떨까?

 

우리 생은 바뀔 것이다.

그로 인해 역사도 뒤바뀔 것이다.

 

 



팽팽하게 대칭되어 멈추면 죽은 우주, 죽은 사회. 힘과 힘이 부딪히는 곳에, 지렛대 꽂히는 그곳에 권력이 작동한다.

 

 

*뒤샹 : 마르셀 뒤샹(1887~1968)은 프랑스의 화가, 개념미술의 창시자. 오늘날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 미친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현대미술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가. 대표작으로는 변기를 전시한 <샘>, <큰 유리>, <자전거 바퀴 의자> 등이 있다. “예술가는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며 예술작품은 그 영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고 -자신을 소변기 샘의 영혼과 동격으로 놓으며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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