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히만 혹은 블랙 요원 그 실존의 순간
가장 철학적인 고민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라고
예전 알베르 까뮈의 책에서 본 듯하다.
셰익스피어도 고민 좀 했겠다.
그러나 죽느냐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할 뿐
주체냐
객체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것이냐
신과 일대일 단독자로서
실존적 사유 할 것이냐
상관이 명령한다고
국민 가슴에 총구 들이댈 것이냐
명령 거부하고 제 전두엽으로 사유할 것이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될 것이냐
생각하는 인간 될 것이냐
나 살자고 사람 죽이는 악惡이 될 것이냐
저는 죽더라도 만인 살리는 선善이 될 것이냐
수동의 부역자
괴뢰 될 것이냐
능동의 주인공
자기 자신의 주인 될 것이냐
바로 그날 12.3
국회에 침투했던,
국회 앞 시민에 막혔던,
안귀령*에 총구 잡혔던,
남태령에 출동했던
군인이나 경찰 직분 아닌
그 개인들의 '실존'이 명멸하는 순간이다.
지금도 복귀명령 떨어지지 않아 방황하는
BLACK들의 고민이다.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 미물인가?
군인이 로봇인가?
최정예 비밀 요원이라는 게 단지 리모컨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군이 먼저인가?
국민이 먼저인가? 명령이 먼저인가?
이를 판단하는 것이 철학
하늘 아래 가장 큰 질문이다.
어떻게 사느냐가
죽느냐 사느냐보다 중요하다.
사람아 사람아
어떻게 살 것이냐?
우리 이대로 어디로 갈 것이냐?
*안귀령: 국회 진입하는 계엄군의 총구 붙잡고 “부끄럽지도 않냐?” 일갈했던 비정규직 앵커 출신 민주당 영입 인재. 현재 민주당 서울시당 홍보소통위원장.
*이 글 쓴 날은 2025.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