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은 이분법이 아니다
빛과 어둠은 상대적인 게 아니다.
이분법이 아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
광자光子는 있고 암자暗子는 없다.
실제로 어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빛이 부재할 뿐이다.
태양 빛 잠시 구름에 가려졌을 뿐이다.
어느 물리학자는 말한다.
“우주는 온통 어둠만이 존재한다.
우주에는 죽음뿐이다.”
오해 소지 있는 말이다.
시적 과장일 수도 있다.
암흑에너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지구, 혹은 –진화 거의 끝 단계까지 온
인간 그 희귀성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맞는 말이다.
지구처럼 인간처럼 펄펄 살아 숨 쉬는 존재는
태양계 주변에선 매우 드물다.
골디락스 존*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우리 말해야 한다.
우주는 그 자체로 생生이다.
생로병사가 있다.
-엔트로피 증가가 그 증명이다.
우주는 온통 빛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어둠이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것
빛과 나란히 놓고 상대적이니 이분법이니 하면
소크라테스 형에게 싸다구 맞는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비인간은 이분법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인간의 길 가야지
사람 죽이는
비인간의 길
짐승의 길
미물의 길 가면 안 된다.
없는 걸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상대적이라고 하면 틀린 것
물리학으로도 철학으로도 틀렸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에 좌나 우는 없다.
이념은 없다.
자기합리화가 있을 뿐이다.
세상 모든 일은 내가 삶의 주인 되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그것뿐이다.
주체적이지 않다면,
이미 휩쓸리고 가스라이팅 되어 휘둘리고 있다면
‘나’란 존재하지 않는 것.
세상 살아가며 중요한 일이 있다면
어떤 사람과 친구 할 것인가
누구와 의기투합할 것인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뿐.
안중근, 윤봉길 같은 태도로 살 것인가
이완용, 윤덕영 같은 태도로 살 것인가
성철 같은 태도로 살 것인가
사이비교주 같은 태도로 살 것인가
자기 전두엽으로 사유할 것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될 것인가
당신은 누구와 친구하고 싶은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박정훈 대령인가
악귀 전쟁광 계엄령 환자들인가
지나가는 개에게 물어봐도 100% 전자 아닌가?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예쁜 사람은
갓난아기가 먼저 알아본다.
아이히만을 다른 인간과 같다고 말하는 건
이분법 강에 빠지지 않으려 용쓰다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 대양에 빠져
즉사하는 꼴이다.
없는 걸 있다고 치고
있는 것 옆에 나란히 놓는 것,
즉 흑백이분법은 아차 하면 할 수 있는 실수다.
그러나 인생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크나큰 실패
친위쿠데타란 사람 몇만 명쯤
죽이려고 시작하는 일
공포정치의 서막
지금 체제가 독재와 다름없다는 반증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자들이나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이 제외한 15~20% 좀비도
사람으로 쳐야 한다고 믿는가?
사람이면 사람의 길 가라.
그렇다면 사람으로 쳐주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저서, 혹은 그 주인공을 말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는 1961년 예루살렘 지역 재판소에서 열린 전(前) 오스트리아 나치 친위대(SS) 상급돌격대 지도자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관한 보고서이며 오랫동안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수용소까지 이송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유대인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으며 법으로 정해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 지점에서 철학적 질문 가능하다. 그에게 죄가 없다면 인간 전두엽은 그 존재가치가 없는 것.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은 죄가 살인죄보다 적을까?
*골디락스 존: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 생명체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의 우주 공간 범위를 나타내는 천문학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