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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설렘병법

거대담론이 죽은 세상

함께 꾸는 꿈이 진짜다

by 절대신비


거대담론이 죽은 세상에선


문학이 죽고
예술이 죽고
아이들 기가 죽고
힘차게 뻗어나가야 할 고구려인 기상도 죽는다.

꿈은 사라지고
어린이들 장래 희망은 공무원이 된다.
요즘은 대통령조차 그 리스트에서 삭제되었다.


과학자도 없고
철학자도 없고
예술가도 밟혀 죽어버린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기분 나쁘게 고요한 세상

하긴 소란스럽지 않은 세상은 이미 죽은 세상


혼자 꾸는 꿈은 꿈이 아니다.
단지 진로 혹은 성취
사적 해프닝

긴 안목으로 큰 걸음 걷지 못한다면
스케일 키우지 못한다면
각자 제 입장에서

‘나’ 하나만 전전긍긍 껴안고 산다면


외계인 쳐들어와도
밖에 나가 전선에서 싸우지 않고
집구석에서 징징거리게 된다.

더 높은 곳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 외부로 향하지 못하고
비전 제시하지 못하고

진취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능동버튼 누르지 못하고
식구들이나 패게 된다.

못난 스스로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

가장 만만한 약자나 괴롭히게 된다.

섬에 갇혀 윌슨 하고나 대화하게 된다.

옆집에서 반인륜적 범죄 일어나도
남의 가정사라고 모른척하는 자신
정당화하게 된다.

이웃나라에서 침략전쟁 일어나도
자국 이익만 계산할 뿐

인간과 문명과 지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구하게 된다.

‘피해자도 잘못 있다’
‘피해국이 도발했기 때문이다’
말만 AI처럼 반복하게 된다.

전자의 전제는
‘명백히 가해자의 잘못이지만’이다.
후자의 전제는
‘약한 주제에 힘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고’이다.

이게 바로 ‘인간비참’

세상에 약자가 가만히 있다고
때리지 않는 강자 있던가?

미국이 나서고 프랑스가 장단 맞추고
촘스키*가 ‘추악한’ 뚜쟁이 노릇 한다고 해서
대충 좋게 좋게 다 끝날 것 같은가?

러시아는 결국

할리우드 영화 속 캐릭터 벗어나지 못한 것

우크라이나가 먼저 서구와 접속할까 두려웠던 것


우크라이나는

이참에 블러핑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것
독립운동의 모양 갖춰진 것


독립운동에 피 흘리는 건 당연한 일

어쭙잖은 도발이 비극의 행로 된 것

사실은 두 쪽 다 서구 문명과
자연스럽게 도킹하고 싶은 것이다.
서구에 합류하지 못하고 소외된다면

어느 나라라도 고립되어 서서히 말라죽게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 피비린내 나는 전선에는

-예전 약자였던 -강자의 능동적 자기 합리화가

대놓고 발톱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서쪽 이야기
서구 문명과 동양 문명 사이에 차원이 존재한다.
기독교 문명과 유교 문명은 팬데믹 상황에서
그 잠재성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마스크 하지 않을 자유부르짖는 기독교 문명
‘공동체에 대한 의리’로

고도의 철학 보여 준 유교 문명


인류는 각자도생과 공존 중

어느 쪽 지향해야 하는가?

지금 바람은 동쪽으로 불고 있다.

세계의 방향성에 우리 사뿐히 올라탈 때다.

그 바람의 이름은 자존감

또는 헌걸찬 기개


무대가 주어졌는데도 쭈뼛거리고 있다면 낭패

일본과 중국이 조금씩 그 역할하고 있는 지금

'다음 타자는 우리'라는 태도 필요하다.


지금은 집안싸움 할 때가 아니라

외계*에 대처해야 할 때

우주로 진출하여 우리 영역 확장해야 할 때

꿈에 접속해야 할 때


마침내 웅대하게 일어서자.
다 함께 꾸는 꿈이 진짜 꿈이다.






미국도 꿈 잃은 지 오래. 트럼프적 해프닝 속에서 허우적허우적. 우리 역시 희망 잃고 헤맸던 적 있다. 인류가 모두 사막에서 길 잃은 것은 아닌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촘스키: 그는 2022년 4월 13일 급진적 매체 <커런트 어페어스>의 팟캐스트 대담에서 ‘푸틴과 소수 측근에게 출구를 열어주는 추악한 해결 시도해야 한다. 핵전쟁 피하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양보해야 한다’고 나름 해결법(?) 제시한 바 있다.

*외계: 외부로 영역 확장하자는 의미의 상징어. 지구인이라면 모두 같은 편. 외계인이라도 쳐들어와야 다 같이 힘 합칠 것 아닌가. 외부 적이 없을 땐 내부에서 편 갈라 싸우는 게 공동체 이루는 인간 본능이자 에너지 쥐어짜 한 점으로 모으는 방법. 우리 때로 그 본능 넘어서는 각성 필요하다. 물론 외계인 쳐들어와도 지구 용사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외계 앞잡이 분명 있을 것. 그 숫자 30% 넘지 못할 것이지만.

*2022년 6월 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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