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 뒤에 숨을 수 있을 만큼
‘나’가 작다면 낭패다.
‘나’가 가려질 만큼 대단한 거대담론이
우리 사회에 있었던 적도 없건만
요즘 다시 쪼그라드는 자신 정당화하며
‘거대담론 뒤로 도망가지 말자’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슬로건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는가 보다.
슬픈 일이다.
나라 위상 곤두박질치니
개인들도 다 쪼그라들어 사소해져 간다.
애초 대륙의 기상 어디로 가고
챔피언 바디* 잃어버렸다.
세계와 만나지 못하는 개인
우주와 접속하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
우주 잃은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주 안에 있었다는 흔적도 없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
그것이 인간 비참.
무대와 유리된 배우는 배우가 아니다.
펜을 잃은 작가는 작가가 아니다.
피아노 압수당한 피아니스트는
더 이상 피아니스트가 아니며
전체와 만나지 못하는 나사 하나는
그 존재 수시로 부정당한다.
대한민국호 침몰하고 있다면
지식인과 언론인은 소리쳐 위험 알려야 하고
위정자들은 목숨 걸고 국민 지켜야 한다.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외치는
리더 아닌 리더, 유사 리더들 사이에서
한가하게 절망이나 유포하며
소확행* 즐긴다면 국민도 국민이 아니고
시민도 시민이 아니다.
화성 테라포밍 허사로 돌아간다면
달이든 타이탄*이든 다음 후보 물색하고 진도 나가는 일
우주항공청이든 한국판 NASA든
이왕이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우주 진출 꿈꾸는 게 시민
그게 언제일지 몰라도
우주 개척은 생각보다 속도 빠를 것이다.
머지않아 우주 시대 살게 될 것이다.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세상 변화 이끄는 것은
인터넷 광케이블, 스마트폰, AI, 우주개발 등
과학이지만
그 진화와 일상의 상호작용 해석하고 논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철학이다.
거대담론은 촘스키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위정자들은 오히려 철학 담론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런 마당에,
‘나’나 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면 그것은
엄마 뱃속으로, 무덤 같은 알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는 바다거북이의 형국
지식인의 자의식 과잉, 혹은 결핍
정작 깨달음도 제 한 몸 단도리하는 게 아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우당탕탕 삐걱삐걱
온몸 피투성이로 대양 향하는 아기 바다거북이처럼
사력 다해 나아가는 것.
깨달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지금 이 나라는 맹금에 잡아 먹히기 직전이다.
국가 존재 자체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시계視界는 희뿌옇고 일상은 무너졌다.
소확행 할 ‘나’가 존재하는가?
‘나’가 그저 ‘나‘ 하나에 머무는 것을
우리는 짐승이라고 부른다.
부모는 자식까지가 ‘나’
지구 온난화 걱정하고 있다면
적어도 지구까지가 ‘나’다.
나라 걱정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나’의 바운더리 ‘나’를 넘어서는 것
보다 큰 ‘나’와 접속하는 것
그게 민주제다.
깨달음이다.
정신 차려야 사는 거지 목숨 연명한다고 사는 게 아니다.
*챔피언바디: 챔피언은 실력 제대로 보기도 전에 몸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챔피언바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대륙과 섬 중 어느 곳이 실력 발휘 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대륙이다. 섬에 갇혀 있는 한 실력이든 꿈이든 가로막힌다. 특별한 외부 –성장 -영역 건설하지 않는 이상 자멸은 가속화된다. 모든 건 시간문제. 우리나라는 대륙이다. 북한에 막혀 있지만, 북한 통과하고 러시아와 중국 관통하여 유럽 땅끝까지 갈 수 있다. 드넓은 잠재력 있다. 그를 버려두고 섬 안에서 복작거린다면 멸망 자초하는 것이다.
*타이탄: 현재 관측된 토성의 63개 위성 중 가장 큰 위성. 화성에 이어 테라포밍 행성 유망 리스트에 이름 올려놓고 있다. 표면 온도는 영화 180도로 낮지만 대기가 풍부하고 얼음 퇴적물이 많아 산소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 밀도 높아 우주 방사선도 막아준다. 유일한 단점은 지구에서 10억 km 이상 떨어져 있어 도착하려면 약간의 시간 걸린다는 것. 참고로 보이저 1호는 3년이 지나서야 토성에 도착했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약어. 한두 명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너도나도 모두가 소확행 타령이라면 확실히 그 사회는 문제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작아지고 위축되었다는 증명.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첫 줄)’ 김수영 시인의 일갈이 떠오르지 않는가?
*2023년 1월 28일 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2024년 현역 시인들 설문조사 결과 ‘가장 좋아하는 시’,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