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담벼락 혹은 마을 회관
세상은 무명 연극배우 말 같은 건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다행히 나이 70, 80에라도 좋은 작품 출연하거나
권위 있는 상 받게 되면,
기적 일어난다면
그날부터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진리처럼 떠받들어진다.
그의 평생은 그로부터 긍정되며
발언은 권위 가진다.
그러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거나
이미지 추락하면
그 화려했던 발언권 압수되고 만다.
이후로는 누구도 그의 말 귀담아듣지 않는다.
마치 조선시대 팽형*이라도 받은 것처럼
세상은 그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무엇인가?
발언권이다.
한 인간의 사회적 철학적 가치는
발언권에 비례한다.
글쓰기를 비롯 모든 인간 행위는
세상에 말 거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SNS,
그중에서도 페이스북에 매일 글 쓰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귀한 것
이미 누리고 있는 셈이다.
단지 내 집 골목에서 소리쳐 외치는 것만으로
내 목소리 세상 곳곳에 전달된다.
친구 많으면 그 속도 더 빠르고 크다.
언론 역할 할 수 있다.
지금 시대 언론이나 일부 기득권에게나
유리한 바로 그것.
우리에게는 세계 지도자들과 촘스키들,
혹은 방탄소년단이나 떳떳하게 가질 수 있는
발언권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철학이란 간단하다.
왜 나에게 말 걸어주지 않나,
어깃장 놓을 것인가
능동적으로 말 걸고 손 내밀 것인가
떳떳하게 자기 사유를 말할 것인가
남의 말에 시비 걸며 구시렁 안티나 할 것인가
주체인가
객체인가
쿨할 것인가
징징거릴 것인가
주도하고 계획하여 판 설계할 것인가
남이 벌여놓은 판에 기웃거릴 것인가
서재 같은 블로그
셀럽 발언 위주 광장 같은 트위터
정담 나눌 수 있는 카페 테이블 스레드
아트 갤러리 브런치 스토리보다
발언권 차원에서 골목 담벼락
혹은 마을회관 페이스북이 단연 세다.
그대가 언론이다.
그대가 페부커다.
페이스북 코리아Facebook Korea는 최근 좀 문제가 있다. 벌건 21세기에 검열과 통제 빈번하다. 요즘은 스레드Threads가 마을회관 역할 증폭되었다.
*팽형: 죄인을 끓는 기름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고대 형벌. 형 집행의 어려움에 따라 점차 기름이나 물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일종의 명예형이었다. 죄인이 빈 가마솥에 들어갔다 나오면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되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죄인의 유가족 또한 상을 당한 것처럼 열심히 통곡하고 장사 치러야 했으며 시묘살이와 제사까지 지내야 했다고. 죄인에게 말 붙여서도 안 되고 누구도 그 이름 불러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형벌.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매장하는 형벌이므로 투명인간형이라는 별칭을 붙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