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는 건 우리다.
시간은 없고 다만
우주가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우리가 눌러야 할 버튼은
능동버튼
반야심경 참조하자.
색은 공이고 공은 색인데
있는 것도 없는 것도 같은데
욕망이 어디 있으며 집착이란 또 웬 말인가?
침잠하여 내 안에 있는 나
따로 주시할 필요 없다.
욕망 없애려고 애쓸 필요 없다.
가장 큰 기쁨 하나로 ‘덮어쓰기’ 하면
자잘한 욕구들 흐지부지 삭제된다.
결국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같게 된다.
인류 단위로 사유하면
단독자로서 신과 일대일로 우뚝 서면
인류에 방향 제시할 수 있다면
80억 대표하여 고독한 결단 내려야 한다면
지금 지구 구하고 있다면
기름진 음식 탐식한다고 해도
제 가는 길 든든히 받쳐주는
에너지원 될 뿐이다.
욕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동력
스트레스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 흔적 될 뿐이다.
따로 오르가슴의 노예 될 일도 없다.
깨달음이라는 장대한 쾌락 한가운데
이미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제 한 몸 안녕을 기도하는 것 자체가 감옥이다.
문 열고 온전히 세계 만나면
걸음걸음이 기적이다.
단지 평상심 구하고 있는가?
‘평안’이 목표인가?
“무슨 소리!
우주의 미래 고민해야지 않는가?”
그냥 심사 복잡하기를.
우주 다 짊어지기를.
우주 배경으로 사유하다 보면
저절로 심플해진다.
생각하자.
욕망은 없다.
사유思惟가 있을 뿐이다.
온 우주 가로지르는 깨달음 있을 뿐이다.
우주는 매 순간 가속 팽창하므로
뒤돌아가거나 퇴행하지 않아도
가진 것 움켜쥐고 그저 가만히 있으면
저 혼자 뒤처지게 된다.
세계는 전진한다.
비우거나 내려놓을 게 아니라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신우일신 새로워져야 한다.
스케일 키워야 한다.
짜릿하게!
고독에도 스케일이 있다. 그대 우주만큼 고독하기를.
(이게 안 될 때 내려놓거나 침잠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