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나’는 누구인가?
‘나’는 기억의 총합인가?
내 몸과 사고와 행동의 그것인가?
그렇다면 욕지거리 한 번 하면
모종의 배신행위 한 번이면
나는 구제 불능의 ‘나’가 되는가?
고해성사나 참회라도 해야 하는가?
마음에 걸려야 하는가?
아니다.
그런 건 어쨌거나 상관없다.
강박을 가지거나 완벽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긍정적인 사건을 플러스
부정적인 사건을 마이너스로 할 때
인생은 어차피 플러스 마이너스 합쳐서 0이 된다.
플러스만 있는 생도
마이너스만 있는 생도 없다.
잘못한 일은 더욱 커다란 긍정적인 일로
‘덮어쓰기’ 하면 된다.
지은 죄가 있다면
정신 차리고 만회하면 된다.
마이너스 통장 메꾸듯 플러스하여
잔고 늘여가면 된다.
“생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부터!”
‘나’를 내 몸이나 행위로 한정 지을 때
‘나’는 감옥이 된다.
제 좁은 영역에 갇힌 수인 된다.
‘나’는 사유의 바운더리
영향의 바운더리
제자가 있다면 그 제자가 움직이는
영역 다 포함된다.
작품 있다면 작품이 끼치는 영향도 해당된다.
바로 영향력이다.
그렇다면 바이든*의 영향력은 어떤가?
미국도 이젠 예전 미국이 아니라
세계 대통령까지는 못 된다지만
지도자 중에선 그나마
우러전쟁까지 신경 쓰는 스케일 되시겠다.
스티브 잡스,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는 어떤가?
푸틴은?
그들은 인류 문명 고민하고 있는가?
방향 제시하고 있는가?
잡스는 죽었지만 그 영향력 아직 좀 남아 있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으로 장사 잘하고 있는 것 같고
일론 머스크는 특유의 진취적 삽질로
인류에게 영감 주기는 한다.
적어도 인류 문명에 대한 고민 한다.
뻘짓도 유쾌하게 하고 있다.
푸틴?
그는 이미 전 지구적 테러범으로 강등되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인질 삼고
인류에 선전 포고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요즘 누구나
인류 문명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자 되어가고 있다.
촘스키*는 어떤가?
인류 단위로 사고하는가?
얼마 전엔 우크라이나 보고
피해자가 참아라, 개소리 시전 하시던데.
그럼 우리 잘난 지식인들은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언론은?
어이쿠야, 말을 말자.
그렇다면 지도자가 아닌 우리는
영 희망 없는가?
아니다.
리더가 아니어도 리더 관점 가지는 게 깨달음.
오히려 자국 이익에만 매몰되어 있는
세계지도자들보다
넓은 시야 가질 수 있다.
높은 고지에 설 수 있다.
각자 자기 고지에 서서
신의 관점으로 세계 볼 때
서로 세계 겹친다.
그 순간이 우리가 진실로 만나는 순간이다.
“그대는 인류 단위로 사고하는가?”
‘나’만을 들여다보고
내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시야 좁아진다.
내 입장에만 서다 보면 사람이 자잘해진다.
자기 밥그릇 지키겠다고 날뛰다 보면
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시대와 함께 나아가지 못하고 강퍅하게 굴면
꼰대 되는 것이다.
깨달음은 ‘나’만을 찾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나의 다른 버전이요
인류와 동의어임을 아는 것.
나의 입장이 아니라 언제라도 서늘하게
진리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나’는 소우주가 아니다.
나사 하나가 아니다.
단지 부분이 아니다.
부분은 전체와 같고
우리는 언제라도 우주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고독한
신의 입장에 서는 순간이 있다.
그리하여 깨달음은 구엘리트 죽이고
신엘리트 탄생하는 장면
왕을 단두대에 세우고 민주주의 쟁취하는 사건
인류를 새로운 질서의 땅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적 거대한 발상의 전환
양자역학이 아인슈타인 엿 먹였듯
기존 질서 때려 부수고 화끈하게 치고 나아가는 것
인류 단위 전쟁이다.
당연히 ‘나’ 혹은 나만의 입장 박살 내야 한다.
우주만 한 망치 혹은 지렛대 필요할 뿐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현미경 따윈 필요 없다.
각자 연장이나 하나씩 챙기자.
올드보이(2003) 장도리도 좋고, 킬빌(2004) 칼도 좋고, 영웅본색(1986) 총도 좋고, 요즘 뜨는 재블린, 스팅어도 좋고. (현미경도 있으면 좋지만.)
*바이든: 2022년 글 쓸 당시 미국 대통령. 그때는 바이든이었지만 지금은 트럼프 되시겠다.
*일런 머스크: 2024년 미 대선을 비롯 요즘 허튼 짓은 수위를 넘고 있다.
*촘스키: 22년 4월 13일 급진적 매체 <커런트 어페어스>의 팟캐스트 대담에서 촘스키는 말한 바 있다. “푸틴과 소수 측근에게 출구를 열어주는 ‘추악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푸틴을 더 압박하고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등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가해자 중심 잔인하고 무도한 ‘힘의 논리’다. 인간본능 넘어서지 못한, ‘피해자 너 하나만 참으면 된다’는 전형적인 개소리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