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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Jul 14. 2022

자주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알랑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중에서

호수 1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대학생 시절이었다. 나는 주일에 교회 사무실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일하시는 사무원분이 들고 있던 머그컵에서 이 시를 처음 보았다.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때 나는 짝사랑 중이었다. 자존심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그리고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누군가에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시를 통해 나의 감정과 기분이 온전히 공감받고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던 마음도 복잡하던 심정도 정리되는 듯했다. 지금은 그때의 짝사랑 대상이 누구였었는지도 희미하지만 여전히 이 시를 보면 그때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의 부제는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예술은 나를 공감하며 위로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생각을 정리해 주기도 하고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고.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중에서      


알렉산더 포프는 시의 한 핵심 기능을, 우리가 어설픈 형태로 경험하는 생각들을 붙잡아 거기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것이라 규정했다. 우리가 ‘자주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경험이면서도 쉽사리 사라지고,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을 붙잡아 예전보다 더 좋게 다듬어 나에게 돌려줄 때,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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