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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Aug 04. 2022

몸은 문제의 장소 위에 글자처럼 씌어진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휴일 날 가족 모두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한쪽 도로에 데모하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있었다. 빨간 띠를 머리에 메고 ‘불법하도급 근절’에 대한 메시지가 적혀 있는 조끼를 입고 있었다. 데모 행렬은 사거리의 집합장소로 향하고 있었는데 집합장소의 교통관제 철탑 위에는 한 사람이 확성기에 대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철탑 아래 집결해 있는 사람들도 일제히 구호에 맞추어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예요?’

첫째가 질문했다.

‘자기들의 의견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왜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 거예요?’

‘좋게 말로 했는데 안 되니까 저렇게 큰 소리로 함께 모여서 하는 거겠지.’     


도로 내 행렬과 경찰의 통제로 차는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고 나는 시위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빨갛게 자극적인 문구로 쓰여 있는 데모 문구와 확성기의 마른 외침의 격렬함과는 대조적으로 아래에 군집해 있는 사람들은 지친 듯 보이기도 하고 무심해 보이기도 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바닥에 앉아 있는 것도 보였고 음료수가 든 봉지를 들고 이곳저곳 다니며 음료를 건네는 사람들도 보였다. 장시간의 시위에 지친 것일 수도 있지만 삶의 터전, 나아가서는 목숨과 직결된 이 문제의 심각함이 삶의 일부분이 되어 무심함과 지침의 모습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globalisation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둥글게 하기’이다. 실로, 세계화의 더불어 지구는 둥글어졌다. 무한한 공간에 대한 상상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졌을 뿐 아니라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둥글어지고 작아지는 지구 위에서 자리를 갖는 일, 또는 자리를 지키는 일은 지난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도처에서 장소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며 포클레인 앞에 드러누운 농민들, 구조조정에 저항하며 연좌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투쟁의 형식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점거, 누워있기, 앉아 있기, 아니면 장소를 원래 정해진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계산대 위에서 잠을 자는 홈에버 노동자들)……몸 자체가 여기서는 언어가 된다. 몸은 문제의 장소 위에 글자처럼 씌여진다. ‘나는 여기 있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 위하여. ‘우리가 수없이 입으로 말했을 때 당신들은 듣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몸으로 글씨를 쓴다. 이 글씨를 읽어달라.’ 그러므로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장소에 대한 권리를 부정하는 상징적 행동들(내쫓기, 울타리 둘러치기, 문 걸어 잠그기, 위협이나 욕설 등)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되곤 한다. ‘여기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다. 당신은 이곳을 더럽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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