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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Aug 18. 2022

‘오래된 미래’로서의 글쓰기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학생 시절 나는 다이어리는 물론 일기도 쓰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글을 쓰려고 용을 쓰고 있다. 처음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였다. 그리고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하고 자문했던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였다. 그러니 나의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동기는 ’ 일‘에 대한 대체의 성격이 컸다. 일은 하고 싶은데 아이도 키우고 싶고, 일은 하고 싶은데 남편의 근무지는 고정적이지 않고. 아이도 내 손으로 키우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글을 쓰는 것'이었던 셈이다.      


창작욕구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이 장래희망이었던 것도 아닌 내가 글을 쓰려고 하니 자기비판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의 동기가 불순한 것이 마음에 켕겼다.

‘재능이 있냐? 쓸 건 있고? 글을 아무나 쓰나? 다른 걸 찾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등등’

이런 생각이 팽배해진 날은 어김없이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내가 글을 쓸 수 있겠냐고 남편에게 따지듯이 물어보기도 한다.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책 제목 그대로 작가는 읽고 쓰는 것을 찬양한다.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무한애정과 경외와 신뢰를 보낸다. 책을 읽고 나는 왜 읽고 쓰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거룩함과 통쾌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감동과 시원함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읽는 것은 나에게 느낌표와 물음표를 주고 쓰는 것은 나의 마음과 생각의 위치를 잡아준다. 이 정도면 계속 읽고 쓸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중에서     


디지털 노매드는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이 또한 기적이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영상과 음악, 미술과 디자인 등 수많은 작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중에 글쓰기보다 더 간결하고 명쾌한 작업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예술이 좀 별로다. 이렇게 기술이 첨단화된 시대에도 예술은 여전히 너무 많은 비용과 시설, 공정과정을 필요로 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역’의 원리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간(簡)과 이(易), 간단하고 쉬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주의 법칙에 부합한다. 그래야 뭇 생명을 낳고 기를 수 있다. 그래야 무수한 변이와 생성이 가능하다. 복잡하고 화려한 건 지엽말단이다.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법칙, E=mc²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지고한가? 인생도 거기에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다. 글쓰기는 오래된 양식이다. 하지만 지극히 단순하다. 기교나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미래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글쓰기! 그러니 부디 알려고 하라! 부디 쓰려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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