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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Oct 27. 2022

I can't go on. I'll go on.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이번 김장할 때 엄마가 서울 오시기로 했는데, 그때 집도 좀 알아보러 다니기로 했어.”

수화기 너머로 언니가 말했다. 언니와 동생은 서울과 경기도에 나는 지방에 살고 있는데 점점 연로해지시는 부모님만 멀리 고향에 계시는 것이 염려되어 몇 해 전부터 부모님에게 서울이나 경기도로 이사 오시라고 권해드리고 있었다.      

“집이 팔려야 가지, 아직은 괜찮다. 너희 아빠 하는 일도 정리를 해야 되고.”라고 하시며 선뜻 그러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번에 집을 알아본다고 하시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결심 이면에는 아마도 얼마 전 돌아가신 막내 외삼촌의 죽음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외삼촌은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다. 투병과정을 지켜보신 엄마는 나중에 혹시라도 병드시면 자식 가까이 계시는 것이 자식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된 죽음이었지만 엄마보다 10살이 어린 막내 동생을 먼저 보내고 혹시 몸져누워계신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뭐하시냐고 물었더니 복지관에서 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한다고 하셨다.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엄마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40년이 넘게 사셨던 곳을 떠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신다. 아직은 두 분 다 건강하시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들을 위해 엄마는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실 결심을 하시고 계신다. 그 담담함과 자연스러움이 감사하기도 하고 마음 한켠이 에리기도 하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 중에서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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