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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Oct 20. 2022

사람을 꿰뚫어 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알렝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언니, 오빠가 얼마나 짠돌이인지 결혼 전에도 커피숍 가면 커피값이 아깝다고 나만 먹으라고 하고 자기는 안 먹었어. 그리고 차가 없으니까 데이트하다가도 버스 끊길까 봐, 택시비 아까우니까 그랬겠지. 얼마나 시계를 보고 그랬는데. 저런 짠돌이랑 내가 왜 결혼했는지 몰라.’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한 말이다. 


남편과 사귀고 처음 맞는 생일에 받았던 선물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친한 남자동료가 내가 받은 선물이 무엇인지 듣고 이렇게 말했었다. ‘흠…. 그 남자가 너를 정말 좋아하는 거 맞아?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한테 돈을 쓰는데….’라고.

내가 그때 받은 선물은 ‘텀블러’였다. 서른이 넘어 만났기에 나도 남편도 회사원이었다. 돈이 없는 대학생도 아니고 그게 뭐야. 센스 없기는…. 생일선물 뭐 받았냐며, ‘반지? 목걸이? 귀걸이?라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렸던 기억도 났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텀블러를 만지작거리며 예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선물로 준 것이었다. 여자에게 잘 보이려면 비싸고 반짝이는 것을 줘야 하는 것이라는 허세도 없고 자신이 가진 것을 포장하거나 부풀려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생활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남에게 으스대며 자랑할만한 선물을 남편에게 받아본 적이 없다. 명품가방도, 화려한 장신구도. 남편에게 근사한 선물을 받는 아내가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선물을 할 줄 모르는 남편이 밉지는 않다.     


알렝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사람들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 또 얼마나 무익했는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 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과장 덕분에 우리는 습관이 된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에게 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믿음을 가지게 된 어떤 사람에게 우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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