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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Nov 03. 2022

알아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는 일

박완서의 '촛불 밝힌 식탁' 중에서

첫째를 낳고 육아휴직 후 친정에 내려와 있을 때였다. 아이를 재우려고 아기띠를 한 채 몸을 흔들며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쟁이를 보며 밤낮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던 때라 이 아이가 언제쯤 내 도움 없이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안전하게 생활을 할 수 있으려냐…. 올 것 같지 않은 시간을 그리던 때였다. 그런데 TV에서 속보가 떴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화면이 나왔다.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이 그 배에 타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부모 없이도 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어서, 저렇게 말도 안 되게 아이를 잃을 수도 있는 거구나...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리고 세월호에 자식을 태워 보낸 부모들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상상도 하기 싫은 감정이었다.     


첫째의 10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또 말도 안 되게 아이를 잃은 부모가 생겼다.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은 얼마나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박완서의 '촛불 밝힌 식탁' 중에서 

나는 얼른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소년 소녀의 머리 꼭대기로 심지가 나와 있지 않으면 그냥 귀여운 인형처럼 보이는 양초를 한 쌍 샀다. 오늘은 집 안의 전깃불을 다 끄고 이 촛불만 밝히고 우리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을 먹자고 하면 마누라는 알아들을까. 알아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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