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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Nov 10. 2022

백년손님

한성우의 ‘우리 음식의 언어’ 중에서

오랜만에 결혼식을 갔다. 대형 예식장이어서 결혼식장 입구에 들어가 주차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코로나로 인한 예식장 참석인원이나 음식 섭취 등에 대한 제한은 전혀 없었다. 마스크만 쓰고 있다 뿐이지 코로나 이전의 예식장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랑 입장이 끝나고 신부 입장이 시작되었다. 주례 없는 결혼이니 예식의 하이라이트인 듯했다. 음악이 시작되고 버진로드( virgin road ) 끝에 있던 문이 반으로 갈라지고 문이 좌우로 스스륵 열리더니 신부가 보였다. 그곳이 신부 대기실이었던 것이다. 신부대기실과 예식장이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조명이 신부를 비추고 하얀 드레스가 빛났다. 긴장한 모습의 신부가 긴 드레스에 넘어질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앞에서 기다리던 신부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문득 언니의 결혼식에서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입을 굳게 다무신 것이 화가 난 듯한 모습이셨다. 나의 결혼식에서의 아빠의 모습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도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한다. 신부가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먼 훗날 나의 아이가 저런 모습을 하고 걸어올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열 살밖에 안된 아이를 옆에 두고 그런 마음이 들다니 나도 참 못 말리는 주책바가지라고 자책해 보았지만 쓰린 마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사위는 도둑놈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놈을 도둑놈으로 생각할까. 모쪼록 우리 아이를 한없이 사랑해 주고 아껴줄 도둑놈이길….


한성우의 ‘우리 음식의 언어’ 중에서

장모님과 사위가 있으면 꼭 따라 나와야 할 것 같은 것이 하나 있으니 씨암탉이 그것이다. 귀한 손님, 특히 ‘백년손님’이라고도 불리는 사위가 오면 잡는다는 것이 씨암탉이다. 그러나 씨암탉의 본뜻을 알고 나면 마음이 영 무거울 수도 있다. 씨암탉은 병아리 번식을 위해 알을 낳는 닭이다. 본디 튼실한 놈이었겠지만 오랫동안 알을 낳다 보니 늙은 닭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그 고기가 맛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더라도 씨암탉을 먹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씨암탉을 잡고 나면 달걀이 사라지고 병아리와 닭도 기대할 수 없다. 씨암탉을 먹는 것은 결국 처갓집의 가장 중요한 재산 하나를 도둑질하는 것이다. 물론 장모는 가장 귀한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바친 것이지만 사위는 딸을 도둑질할 것으로도 모자라 또 다른 도둑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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