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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Jan 26. 2023

관객들이여, 자신의 눈을 신뢰하라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중에서

명절이라 친정에 다녀왔다. 방마다 작은 사이즈의 켈리그라피가 하나씩 걸려있었다. 짧은 글이 있고 글 주변은 알록달록한 꽃으로 꾸며져 있다. 흰 바탕에 구불구불한 글과 작지만 화려한 꽃은 산뜻하고 아기자기하다. 엄마의 솜씨다.      


언제부터인가 친정집의 벽면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퍼즐이었다. 엄마는 500피스, 1000피스 퍼즐을 끝내시면 유액을 발라 고정시킨 뒤 액자에 걸기 시작하셨다. 점점 늘어나는 퍼즐이 감당이 안 되자 퍼즐을 완성하시면 유액을 발라서 고정시켜 놓고는 한쪽에 쌓아두신다고 했다. 나는 퍼즐을 다시 부숴서 상자에 다시 넣어놓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엄마가 어떻게 맞춘 퍼즐인데 아까워서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셨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퍼즐 1000조각을 한 조각 한 조각 들여다보며 맞췄을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니 다시 부숴버릴 수는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하셨다. 그해 친정집에서 나는 엽서크기의 수채화가 부엌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다를 그렸다. 해 질 녘인가 보다. 바다색깔은 검푸르고 선명한 붉은색을 잃은 해는 수평선에 잠겨있다. 쓸쓸하고 서늘한 느낌이 겨울 바다 같다. 그리고 내가 우엉이냐고 했던 나무 그림도 걸려 있었다.     


지나치게 큰 사이즈의 명화그림 퍼즐 액자가 거실의 중앙의 가족사진 양 옆에 당당히 걸려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방마다 걸린 퍼즐액자와 엄마의 그림들은 무늬벽지의 어수선함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벽에 걸린 것은 엄연히 엄마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엄마의 작품이다. 그러니 친정집은 엄마의 갤러리인 셈이다. 이제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갤러리에 새로운 작품이 들어왔나 살피며 집안을 둘러본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엄마에게 달라고 해볼 생각이다.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중에서     


결국 전문작가들의 그림 보는 취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관객들이여, 자신의 눈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어느 작품이든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 한구석이 절실해짐을 느낄 때, 그것은 당기는 것이다. 자신의 미적 경험이 그 작품과 함께 겹쳐질 때,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취향은 어떤 잘잘못을 가릴 잣대도 갖다 댈 수 없는 것이기에 감상자는 모름지기 자신의 판단을 떳떳하게 밝혀도 부끄러울 게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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