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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Jan 19. 2023

나는 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중에서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의견을 말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생각과 기분을 표현할 때도 잘 쓰는 것 같다. 일단은 정말로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도 그렇게 말한다.

정리되지 않아 모호한 생각과 명확하지 않은 나의 기호는 결국 ‘잘 모르겠다’로 귀결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선이 주는 딱딱함이 조금은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이라고.

물론 나의 ‘모른다’와 소크라테스의 ‘모른다’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고 하니 나 나름대로 나의 ‘모른다’의 장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노력할지도 모르다. 모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모르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모른다’에서 멈추지만 않는다면.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중에서     


말하자면 철학자는 세계를 마치 외계인이나 어린아이처럼 바라본다. 모든 게 항상 완전히 새롭다. 이들은 확고히 뿌리내린 판단을 불신하며, 심지어 전문가의 지식 자랑을 믿지 않는다. 철학자는 일단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위대한 철학 영웅의 본보기를 따른다. 철학 영웅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했던 유명한 변론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나는 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런 태도 면에서 철학자가 변한 것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철학으로부터 배울 것은 참 많다. 특히 세계가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준다. 철학은 항상 모든 것을 의문시하며, 철학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한다. 그리고 단지 이런 방식으로만 전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철학과 그 중요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우리는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을 시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묻고 또 묻는 이런 자세야말로 인류의 거의 모든 위대한 성과를 낳은 원동력이다. 우리가 어떻게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면, 민주주의와 자유 공동체라는 이상은 결코 얻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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