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빅셀의 ‘지구는 둥글다’ 중에서
어렸을 때 나는 엄마와 사이에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엄격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었고 늘 분주하셨다. 내가 느낀 거리감은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기도 했다. 친구 같은 엄마를 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남편의 해외발령으로 한국을 떠날 때 첫째는 5살, 둘째는 이제 막 100일이 되었을 때였다. 공항으로 나오셨던 엄마는 눈물을 보이셨다. 다 큰 딸이 딸들을 데리고 남편과 가는데도 엄마는 눈물이 나셨나 보다. 외국에 있으면서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엄마와 통화를 했다. 걱정하시지 않게 어떻게 사는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했던 것이 습관이 되어 매일 통화를 하게 되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를 하다 보면 어떨 때는 1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었다. 그때 엄마와 했던 통화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엄마가 있었는데 유난히 나에게 거들먹거리고 꿍하게 구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마디 하셨다. ‘동네마다 꼭 그런 이상한 여편네가 있어. 우리 동네에도 그런 여편네가 하나 있거든. 신경 쓰지 마라.’ 그 말을 듣고 내가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엄마가 친구처럼 느껴졌다.
함께 있어도, 가족이어도,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시간을 내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관계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한다. 이제는 엄마에 대한 거리감도 서운함도 없다. 그리고 친구 같은 엄마를 둔 사람도 더 이상 부럽지 않다.
페터 빅셀의 ‘지구는 둥글다’ 중에서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몇 날, 몇 주, 몇 달, 몇 해가 지난 뒤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책상 앞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기만 한다면 훗날 책상의 반대쪽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나는 알지.” 남자가 말했다.
“그걸 알긴 하지만 믿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진짜 그러지 한번 시험해 봐야겠어.”
“똑바로 걸어가 보는 거야.”이제 아무것도 더 할 일이 없는 그 남자는 이렇게 외쳤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똑바로 걸어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