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싫든 좋든, 적든 많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물리적으로 철저하게 혼자인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그를 낳고 돌봐주었을 테니까. 그리고 모든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 수는 없으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관계를 맺고 살았던 사람들과 나누었던 수없는 대화, 그중에 의도를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며 했던 말들, 아무 생각 없이, 또는 무슨 뜻이지도 모르고 했던 말들, 실없는 농담, 누군가를 겨냥하며 했던 가시 돋친 말 등등. 분명히 기억하는 것부터 희미하게 기억하는 것, 기억에조차 남아 있지도 않는 일들에 대해 나는 불안함을 느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소설은 화자의 대학시절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자기 합리화에 의해 잊혀지고 각색된 자신의 기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자신의 인생을 흔들어놓고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낳는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하게 알아야만 한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나는 이 소설이 매 순간 신중해야 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교훈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20대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어렸고, 미성숙했고, 어리석었고, 실수했다. 내가 그렇듯 그도 불완전한 인간이다. 나는 기억이 불완전하며 나의 시선으로 각색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고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각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내가 가진 불완전하고 희미한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소설은 나에게 나의 인생을, 기억을 돌아보게 했다.
책의 마지막에 번역자의 글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분량이다. 원문으로는 백오십 페이지밖에 되지 않아서 경장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맨부커상 수상 시, 일각에선 분량으로도 말이 오갔다. 반스 자신은 책 분량이 짧다는 일각의 지적에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번역자 최세희의 글 중에서)”
나도 그랬다. 한번 읽고 다시 읽었다. 그러니 줄리언반스의 말에 나도 동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