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경철 Mar 03. 2023

일단 버스에 타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든 시작되는 것

김금희의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중에서

4년 전 이사 간 언니의 집을 처음으로 갔다 왔다. 첫째 조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언니는 학원이 밀집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동안 나는 나대로 남편을 따라 해외로 갔다가 다시 지방의 작은 도시에 와서 살다 보니 이제야 언니 집을 가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에 언니 집에 도착했다. 6시에 학원수업이 끝난다는 조카를 마중 나가기 위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언니를 따라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니 큰 대로가 보였다.

‘와! 사람 많다. 차도 많고.’ 첫째가 소리쳤다. 언니는 내 옆구리를 치면서 촌티 나게 너무 두리번거리는 거 아니냐고 웃으면서 놀렸다. 사거리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그것도 동시에. 심지어 대각선으로도 건널 수 있다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횡단보도로 몰려나왔다.

길가의 차선은 노란색 학원차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분주하게 차에 탈 아이들과 노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건물마다 비슷한 복장의 아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사는 곳에서 일 년 동안 볼 사람과 차를 여기서 한 번에 다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조카는 대형 수학학원의 가장 낮은 레벨의 반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가장 높은 레벨의 반이 되었다고 했다. 지속적으로 레벨조정을 위한 시험을 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영어학원도 같은 시스템이라고 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이 저렇게 많구나. 대형학원의 학업진도만 따라가면 별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저 수많은 아이들 속에 나의 아이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저녁이라 더 반짝이는 각종 음식점과 상점들의 간판이 내가 지금 마땅히 누려야 할 그 무엇인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첫째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이모 집 어땠어? 좋았지? 볼 것도 많고. 우리도 거기 가서 살까?’

‘그럼 아빠는요?’

‘주중에는 못 보고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같이 지낼 수 있어.’

‘아빠 자주 못 보는 건 싫은데. 떨어지는 것도 싫고’

남편에게도 넌지시 물어보니 '저녁에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면 그날의 피로가 풀리는데…' 하며 말끝을 흐린다.     


사람도 차도 없는 집 앞 사거리에서 차례차례 바뀌는 신호를 기다리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지 생각했다. 밀리고 치이는 인파 속에서의 불쾌감? 정체된 차 안에서의 답답함?

비슷한 복장의 아이들이 노란색 학원 통학버스에 줄지어 타는 모습이 생각났다. 내 아이도 일단 저 버스를 타면 뭐가 되었건 어떻게든 뭔가를 하게 되겠지…. 그러면 나는 마음이 놓일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불안해 질까? 당장 닥친 일은 아니니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좇아 보낸다. 그냥 우리 동네도 동시신호와 대각선 횡단보도나 생기면 좋겠다.     



김금희의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중에서


하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면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기보다 마치 밭에서 무 같은 것을 뽑아 올리듯 자신을 이불속에서 끄집어낸다는 느낌이었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마을버스를 타고 정류장까지 왔고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컨디션이 얼마나 좋든, 정신을 얼마나 차렸든, 출근 준비가 얼마나 되었든 그렇게 일단 버스에 타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든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버스 기사에게도 운전은 일이니까 어떻게든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진입하고 몇 개의 정류장을 거쳐 선미를 정확히 신촌에 내려주었다. 내내 졸다가 다행히 본능적으로 잠에서 깬 선미는 휘적휘적 내려 요깃거리를 찾아보는 것이고.     

작가의 이전글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