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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Mar 10. 2023

한 번뿐인 어느 한때

전경린의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중에서

종합과자선물세트가 들어오는 날은 우리에게는 잔칫날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박스에 든 과자는 우리 5형제 모두에게 골고루,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했다. 이때만큼은 맏이라고, 아들이라고, 막내라고 특혜를 받는 것은 없었다. 과자 앞에 모여든 우리는 과자가 골고루, 공평하게 분배되는 모습을 진지하게 지켜본다. 집행자는 맏이인 언니였다.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든, 스낵처럼 한 봉지에 한꺼번에 들어있는 것이든 언니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동생들에게 자신을 포함해서 하나씩 하나씩 카드를 돌리 듯 나누었다. 한 바퀴를 돌고 짝이 맞지 않게 남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5조각으로 나눌 수 있으면 그렇게 했고 그게 어려운 경우는 가위바위보를 했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분배를 놓고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었다. 아마도 4쌍의 눈이 쏘아대는 날카로움과 분위기의 엄중함에 언니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나는 한 번에 한 개씩 둘이서 상의해서 고르고 나눠먹으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날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먹고 다음에는 네가’ 하는 식으로 서로 협상을 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내가 이것을 너무 먹고 싶으니...’라며 감정에 호소하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번에 한 개씩만 고르게 하는 이유는 형제가 콩 한쪽도 나눠먹으며 우애를 다지라는 뭐 그런 큰 뜻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몸에 좋은 게 아니니 많이 먹지 말라는 의도가 더 클 것이다.  

나의 부모님이 과자분배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셨던 것도 어떤 교육차원이었다기보다 5명이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그냥 던져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5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조용하지만 진지하게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자신 앞에 모여지는 과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필시 부모님에게 웃음을 주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나의 부모님에게도 나의 아이들에게도, 한번뿐이 어느 한때가 그렇게, 이렇게, 그때도, 지금도, 흘려간다.



전경린의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중에서     

우리는 우기의 과일처럼 세월에 떠밀려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그때 이후론 한 번도 더 그 노래를 부르지 않고 춤도 추지 않았다. 그런 때는 우리 일생에서 꼭 한 번뿐인, 강물 위로 마구 풀려나간 아까운 실타래처럼, 한 번뿐인 어느 한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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